지카바이러스 증상 있었지만 ‘지침’에 미달… 신고 3일 늦어졌다
입력 2016-03-22 21:27
한국인 첫 지카바이러스 환자 L씨(43)는 브라질에서 모기에 물려 감염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기에 의해 감염된 게 아니어서 L씨로 인한 추가 감염 가능성은 낮다. 방역 당국은 감염병 경보 단계를 ‘관심’으로 유지하되 환자 유입을 감시하기 위해 출입국 정보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모기기피제 엄청 뿌렸는데도 물렸다”=L씨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9일까지 브라질 세아라주(州)에서 22일간 머무르는 동안 모기에 물린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이집트숲모기는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다.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16일 증상이 나타났으므로 잠복기 14일을 고려할 때 지난 2일 정도에 물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22일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다른 관계자는 “L씨가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고 기피제를 엄청 뿌리고 긴팔 옷을 입었는데도 물렸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L씨는 9일 브라질을 출발, 독일을 경유해 국적기를 타고 지난 11일 귀국했다. 5일 뒤인 16일 발열 증상이 나타나자 18일 전남 광양의 선린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이때 브라질 체류 사실을 의사에게 알렸다. 당시 주요 증상은 발열(37.6도와 37.2도)이었고 감기몸살 기운과 오한, 경미한 구역질도 있었다. 목구멍이 발갛게 붓는 현상도 관찰됐으나 의사는 “좀 기다려 보자”면서 신고는 하지 않았다.
선린의원 의사가 방역 당국의 지침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월 배포한 지침에서 ‘37.5도 이상의 발열과 함께 관절통, 근육통, 결막염, 두통 중 하나 이상의 증상이 있을 때’ 신고하라고 안내했다.
결국 신고는 L씨가 근육통과 발진 증세로 다시 병원을 찾은 21일 이뤄졌다. 의료 일선에서 당국의 지침을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를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이다. 이에 당국의 지침이 느슨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 본부장은 처음에는 “의료기관에서 아주 적절히 판단했다”고 했다가 “왜 신고를 안 하게 됐는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추가 감염 가능성 낮다…관심 단계 유지=방역 당국은 L씨로 인한 추가 감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지카바이러스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달리 일상적인 접촉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주요 매개체는 모기이지만 지금은 모기가 활동하는 시기가 아니다. 모기에 의해 옮는 다른 감염병인 ‘뎅기열’도 최근 해마다 200명 이상씩 해외에서 환자가 유입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추가 전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성관계로 인한 감염 가능성은 남아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성관계를 통한 지카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4일 성관계 주의 기간을 1개월에서 2개월로 늘리는 새로운 권고안을 발표했다. 당국은 L씨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검사와 역학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L씨는 열이 나지 않고 발진이 상당 부분 가라앉았음에도 이날 전남대병원에 입원했다. 방역 당국이 ‘한국인에게는 어떻게 증상이 나타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고 본인이 흔쾌히 협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당국은 격리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추가 유입 대비 로밍 정보 등 활용=방역 당국은 우리나라의 교역 규모나 관광 현황 등을 감안할 때 해외에서 감염돼 입국하는 환자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L씨가 출장으로 머무른 브라질 세아라주는 동국제강과 포스코가 현지 철광석 기업인 발레와 공동으로 일관제철소를 짓고 있는 곳이다. 당국은 아직 귀국하지 않은 L씨의 동료들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당국은 브라질 등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국을 방문하고 제삼국에서 일정기간 체류한 뒤 귀국하는 입국자를 파악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의 로밍 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법무부와의 협력을 통해 제삼국을 거친 입국자에 대해서도 귀국 뒤 안내 문자를 보내고 있다. L씨도 독일을 경유해 입국했지만 귀국 이후 증상이 의심되면 신고하라는 문자를 세 차례 받았다고 한다.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