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에 몸 담근 봄, 전북 임실 옥정호의 봄

입력 2016-03-23 20:37
전북 임실군 운암면 국사봉 전망대를 찾은 관광객이 옥정호 가운데 붕어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섬 모양이 힘차게 헤엄치는 붕어를 닮았다.

지난해 극심한 가뭄에 사라졌던 금붕어가 돌아왔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한 옥정호(玉井湖)에 물이 차면서 호수 한 가운데 섬이 다시 신비한 붕어 모양을 갖춘 것이다.

섬진강 젖줄인 옥정호는 1965년 섬진강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적지 않은 수자원을 확보하게 해줬지만 고향을 잃은 수몰민에게는 망향의 슬픔을 안겨줬다. 수몰의 아픔과 그것을 묻어버린 애잔한 아름다움을 지닌 옥정호 주변을 걸어보자.

옥정호 풍경의 절반은 물안개의 몫이다. 새벽녘 물안개가 호수를 감쌀 때면 선경이 따로 없다. 물안개를 제대로 보려면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봄·가을철이 좋다. 일출 전후로 물안개는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안개가 없더라도 옥정호 풍광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게 시원하다.

옥정호 주변에는 물안개길이 조성돼 있다. 옥정호 둘레를 걸으며 호수의 아름다움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운암면 마암리를 기점으로 용운리 용운마을에 이르는 13㎞ 총 3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1구간은 마암리 승강장에서 육모정까지(1.6㎞), 2구간은 육모정에서 못지골까지(2.45㎞), 3구간은 못지골에서 용운리 승강장까지(8.95㎞)다. 모두 4시간30분가량 걸린다.

길은 때 묻지 않은 오솔길이다. 구불구불 호수를 따라 이어져 있는 고즈넉한 이 길을 걷다보면 산과 물 구경에 세상시름을 다 떠나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암리 승강장에서 출발해 40분쯤 걷다보면 제1 구간 종점인 육모정에 다다른다. 육모정 인근에서 볼 수 있는 옥정호 드라이브 코스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제2 구간을 걸어 상운암 쪽으로 걸어가면 처음 트였던 호수보다는 아늑한 풍경을 맞게 된다. 약간 평탄한 길을 가다 두 군데의 대숲을 지나면 다소 힘든 길이 시작된다. 제2 구간의 종점도 역시 옥정호 순환도로와 연결돼 있어 도보여행에 지치고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들의 불편을 덜어준다.

3구간은 옥정호 순환도로로 지나쳐 다니면 볼 수 없는 옥정호의 비경을 보여준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용운리 깊숙이 들어가 보면 옥정호가 감추고 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신비한 붕어섬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호수 주변을 조용히 걸으며 굽이굽이 산 능선과 호수를 번갈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 것을 느낄 수 있다.

물안개길 도보를 마치고 나서 조금만 가면 국사봉(475m)이 있다. 붕어섬의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산들이 옥정호를 품고 있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국사봉에서 오봉산까지 산행 코스는 적당한 난도에 넓은 시야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다리 힘이 약한 사람은 국사봉 전망대까지만 올라가도 좋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걸어서 20분이다. 처음 절반까지 계단이 놓여 있다. 전망대에 서니 활기차고 날렵한 모양의 붕어가 반긴다. 화려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듯하다. 섬 가운데 옷 벗은 나무들은 숭숭 솟은 붕어의 비늘처럼 보인다. 주변이 다른 산으로 막혀 있지 않아 붕어섬을 더욱 완전하고 가깝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붕어섬 주변 옥정호의 옥빛 속살도 제대로 보인다. 담백한 수채화 같은 풍경에 눈과 마음이 취한다.

붕어섬은 상수원 보호구역이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옛 주민들은 외따로 떨어진 산이라며 ‘외얏날(외안날)’이라고 불렀다. 강줄기가 바깥 날과 안 날을 빙돌아 S자를 그리며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날’은 산등성이를 말한다. 더 오래 전에는 ‘섬까끔’이라고 불렸다. ‘까끔’은 전라도 방언으로 ‘벼랑’이다. 외안날의 북동쪽 날이 깎아지른 벼랑처럼 생긴 데서 연유했다.

산에 오른 지 약 40분 정도면 국사봉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드넓은 옥정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운암대교까지 시야에 잡힌다. 멀리 옥정호를 포위하고 있는 오봉산, 묵방산, 회문산도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진안 마이산까지 보인다.

산행을 목적으로 방문한 등산객들은 대부분 국사봉 정상을 지나 오봉산으로 넘어간다. 오봉산은 임실군 운암면·신덕면, 완주군 경계에 있으며 옥정호의 드넓은 물줄기와 옥정호 주변을 부드럽게 둘러싼 첩첩 산들을 보여준다.

옥정호 근처는 민물고기를 주 재료로 한 음식점이 많고 유명하다. 과거 깨끗한 물에서 어업을 주로 삼았던 주민들 덕분이리라.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직접 어업을 할 수는 없지만 옥정호에서 먹는 매운탕은 특별하다.

임실=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