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대표직 사퇴 카드까지 꺼낸 것은 ‘지도부 흔들기’를 초반에 확실히 제압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총선 국면에서 당이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상황을 이용해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얘기다.
◇김종인 극약처방 이유는=김 대표는 22일 그동안 말로만 언급했던 대표직 사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음을 적극 피력했다. ‘나를 흔들면 실제로 당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공천혁신안을 수정하고, 당규 개정권과 비례대표 후보 추천권 등 비대위 권한을 대폭 확대했지만 당내 저항에 부닥치지 않았다. 공천 결과가 발표되면서 일부 공천 탈락자들이 김 대표를 비판하거나 탈당을 결행했지만 ‘김종인 지도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공천 국면이라는 ‘특수 상황’과 “당이 개혁 의지가 없으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김 대표의 배수진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비례대표 공천 국면에서 처음으로 주류 진영의 조직적 저항에 부닥치며 비대위 결정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곧바로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김 대표가 어제 저녁때까지 저런(사퇴)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전날 언론과의 접촉에서 “패권을 행사하려면 똑바로 하라” “비대위원들 행동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는 등의 언급으로 친노(친노무현) 주류 진영은 물론 비대위까지 거칠게 몰아세웠다. 자신에게 ‘구원투수’를 요청해 놓고 공격한 친노계와 ‘그룹별 투표’로 논란을 촉발하고 자신의 비례대표 후순위 배정을 결정하려 했던 비대위 모두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일단 경고의 효력은 어느 정도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사퇴 시사에 당은 발칵 뒤집혔다. 비례대표 논란이 가열됐던 기간에도 침묵을 지켰던 문재인 전 대표가 오전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의 비례대표 상위 순번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모자라 그를 만류하기 위해 급거 상경하기까지 했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총선 이후 대선까지 ‘당의 간판’이 돼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 이후에도 진통 계속될 듯=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김 대표와 주류 진영 사이 갈등은 총선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 대표 측 인사인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대위가 대표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공관위에서 보내지 않은 새로운 명단이 (중앙위에) 들어간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네 세력과시용 메시지”라며 “총선 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주류 측에서도 반발이 감지된다. 주류 진영의 한 인사는 “자신만이 옳다는 식의 태도로는 이 당을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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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22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