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전통시장까지 살리게 생겼다. 정부가 아니라 기업들 얘기다.
지난 21일 세종과 서울정부청사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통시장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발표 직후 공기업과 민간기업들의 고민은 커졌다. 중기청이 이날 대책 중 하나로 내놓은 온누리상품권 판매촉진책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기업과 공공부문의 구매 확대 등을 통해 국정과제인 온누리상품권 1조원 판매 목표를 당초 2017년에서 금년 중에 조기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 시장을 보호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발행되고 있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전용 상품권이다. 발행처는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다.
판매 촉진 해법으로 정부가 제시한 것은 공공부문인 공기업·준정부기관과 민간기업들의 구매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개인 구매는 크게 늘었지만 공공부문 구매는 정체돼 있고 기업부문은 소수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게 중기청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공기업과 민간기업들에 온누리상품권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봉에 선 것은 기재부다. 기재부는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협조부문’ 항목에 속해 있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들의 상품권 권장 구매비율을 기존 경상경비의 0.6%에서 1.0%로 늘리도록 했다. 해당 부문에서 지난해와 동일한 경영평가를 받으려면 더 많은 상품권을 사야 한다.
일부 대기업에 편중된 상품권 구매를 전체 기업으로 확산시키는 방안도 공공부문과 다를 바 없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대기업의 공정거래 협약 실적인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상품권 구매 비중을 높이기 위해 평가배점을 0.5점에서 1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공부문을 포함한 기업의 설·추석 온누리상품권 구매 계획과 실적은 국무회의에 보고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영세 상인을 살리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선의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강매와 다름없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들에 떠넘긴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공기업 임직원은 “지난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조기 도입에 나서면서 내세운 압박 수단은 경영평가”라며 “또다시 온누리상품권 구매를 늘리겠다며 경영평가를 얘기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관계자도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도우라며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어 기업들 부담을 주더니 이제 시장까지 살리라고 한다”면서 “청년 일자리도, 시장 살리기도 모두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청년희망펀드에 동원하더니 이번엔 온누리상품권 강권… 공기업·민간기업 “정책 들러리냐” 냉가슴
입력 2016-03-2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