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을 끝내기 위해 여기 왔다.”
버락 오바마(54)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쿠바의 알리시아 알론소 국립극장에서 쿠바 국민들에게 생중계 연설을 통해 “쿠바의 미래는 쿠바 국민 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한 뒤 “테러리스트와 테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스페인어를 섞어가면서 쿠바인들에게 변화와 희망을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쿠바의 오랜 적대관계와 양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는 일당 지배국가이며 사회주의 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다당제 국가이며 열린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여러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나는 양국의 정상화를 선언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나는 쿠바 국민들을 믿는다”며 “쿠바의 미래와 변화는 쿠바 국민,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오전 정상회담을 갖고 정상화 이후 양국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그러나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 쿠바의 정치 민주화와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카스트로 의장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쿠바 봉쇄정책을 해제한 것을 지지한다”면서 “그러나 금수조치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의회가 얼마나 빨리 금수조치를 해제할지는 쿠바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이에 카스트로 의장은 “만일 쿠바에 정치범이 있다면 명단을 제시해보라”며 “보편적 건강보험과 교육, 동일 임금을 실시하고 있는 쿠바에 미국이 인권을 가르칠 자격이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카스트로 의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양국의 화합 의지를 보여주려 한 제스처였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팔은 손 끝부분이 축 처져 있었다. 이를 두고 미 NBC 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과정에) 뭔가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과는 달리 혁명궁전에서 열린 국빈만찬은 화기애애했다. 만찬에는 쿠바 전통음악이 연주됐고 쿠바의 대표적 수출품인 시가를 음미하는 시간도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문을 계기로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가 시간문제라고 판단한 미국 기업들이 쿠바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13개 항공사가 미국 내 20개 도시에서 쿠바로 직항하는 항공편 신설을 신청했다. 쿠바를 경유하는 노선 등을 포함하면 미국과 쿠바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연내에 23개 노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 최대 크루즈 선사인 카니발은 5월1일부터 미-쿠바 크루즈 여행을 시작하며, 노르웨이 크루즈도 쿠바 정부와 교섭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호텔체인 사업체인 스타우드는 쿠바의 유서 깊은 ‘호텔 잉글라테라’의 경영권을 쿠바 정부로부터 인수했으며, 메리어트는 호텔 사업 부문에 진출한다.
세계 네트워크 통신장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시스코는 쿠바에 IT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며 GE는 항공, 건강, 에너지 부문에서 쿠바 정부와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쿠바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바나의 미 대사관에서 쿠바의 인권운동가들을 만났다. 오후에는 쿠바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메이저리그 플로리다의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국가대표팀 간 야구경기를 관람했다. AP통신은 “쿠바에선 야구가 국기(國技)지만 50년간 국가 주도로 운영돼 왔기에 붕괴 직전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다음 순방지인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오바마 “냉전 끝내러 왔다”… 쿠바 국민에 변화 호소
입력 2016-03-22 21:05 수정 2016-03-23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