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학대·방임된 아이들 돈 없다고, 힘들다고 그냥 두면 어쩌나요?”

입력 2016-03-22 21:06
30여년 전 의대생 신분을 버리고 야학교사로 나섰던 크리스천 김명현. 목사가 되어 줄곧 ‘학대·방임 아이들’을 섬긴다. 사역 질문에도 허허 웃으며 쑥스러워했다. ‘공동체’ 벽화를 배경으로 어렵게 잡은 사진이다.
부천 소사구 전철길 옆 공동체 대안가정 샬롬빌리지.
자원봉사자 채옥희 권사(부천 중동온누리교회) 등이 대안가정 주방과 책장 앞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뒤돌아서면 일이다.
카페 겸 식당 ‘두루두루’
여의도침례교회 대학부원이던 그의 꿈은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였습니다. 의사가 돼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아프리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은 서울 구로공단입니다. 육사 출신 군인 아버지와 교사 출신 어머니 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구로공단 야학교사를 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13세 소녀는 계부의 폭력에 시달리다 공장에 왔고, 시골 출신 15세 소녀는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위장병을 앓았습니다. 여공들을 가르치고 몸 아픈 소녀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던 의대생의 고민은 점점 커졌습니다. 가난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한 소녀 여공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소녀의 꿈을 빼앗는 세상….

2년 가량 방황하던 그는 중앙대 의예과를 그만두고 연세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교회 건물 대신 공동체 세운 김명현 목사

김명현(51) 목사의 ‘선한목자교회-선한공동체’(선한공동체)는 교회 건물이 없습니다. 목회 초기에 교회를 개척했지만 교인들은 다 떠났습니다. 불우소년과 장애인 등을 섬기는 힘겨운 목회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 건물 대신 가난한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선한공동체는 부천 소사구 기찻길 옆에 있습니다. 지나가는 전철과 뛰노는 아이들로 늘 시끌벅적합니다. 선한공동체가 운영하는 대안가정 ‘샬롬빌리지’ 6가구에는 10여명의 고아와 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많을 때는 20명이 넘었습니다. 거리 소년들도 데려와 살았습니다.

현미(가명·이하 어린이 및 청소년 가명) 남매는 아빠에게 학대당했습니다. 초등학생 현미는 아빠와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까지 당했습니다. 법원은 친권을 박탈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남매를 각각 다른 시설로 보내려 했습니다. 부모 잃은 남매를 떼어 놓다니…. 항의하던 김 목사는 남매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샬롬빌리지에서 10년 넘게 살던 현미(22)는 이제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진 미연(17)이는 삼촌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학교를 떠난 미연이는 쉼터 생활 중 만난 언니들에 의해 모텔에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했습니다. 경찰에 구출된 뒤에도 환청과 우울증, 정신분열 등에 시달렸습니다. 샬롬빌리지에 와서야 악몽에서 벗어난 미연이는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은아(19) 세연(16) 남매와 연미(22)는 시설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 지적장애인입니다.

샬롬빌리지 아이들은 1인1실에서 지냅니다. 초등학교 5학년 훈이의 방은 개구쟁이답게 투박하고 연미의 방은 소녀답게 예쁘게 꾸며졌습니다. 빨강 스웨터를 입은 연미가 수줍어하며 방을 보여줬습니다.

선한공동체 운영 주체는 ‘서번트’

선한공동체의 모델은 미국 세이비어교회입니다. 교회 부설 서번트리더십학교(The Servant Leadership School)를 이수한 김 목사 부부는 2003년 한국에서 선한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선한공동체의 주축은 인턴 과정 3년을 거쳐야 될 수 있는 서번트(섬기는 사람)입니다.

현재 서번트는 김 목사 부부와 정봉임, 박현주씨 등 모두 다섯 명입니다.

선한공동체는 헌금과 후원금, 월급 등의 수입을 공동 재정으로 운영합니다. 직장 생활하는 서번트는 월급을 내놓습니다. 각각의 서번트에게 분배된 월 사례비가 어떤 때는 30만원, 어떤 때는 100만원입니다. 청빈한 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루 세 번 서번트 기도회, 관상기도 훈련과 리더십 훈련, 서번트 회의 등을 합니다.

3년째 인턴 생활 중인 조형래(34)씨. 캐나다 유학생 출신으로 부동산중개사였던 그는 각각 16, 17세인 장애인 소년과 한 가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턴 생활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사는 전셋집 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놨으니 이사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며 집 걱정부터 합니다. 서번트 한 명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선한공동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지 않습니다. 지원금을 받는 순간 아이들이 사업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김 목사는 “지원금을 받으면 성년이 된 아이들은 내보내야 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조건에 따라 돌보고 외면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다. 선한공동체는 무한책임을 진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했더니 이렇게 일러줍니다.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드는 사람, 어두움을 밝히는 사람, 헌신과 희생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 외치기보다 실천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의 손을 선뜻 잡아주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선한공동체는 샬롬빌리지 외에도 ‘쉴터’(장애아동지원센터) ‘좋은 친구’(장애인자립생활공동체) ‘물푸레나무’(거리청소년지원센터) ‘사마리아-인’(청소년예비가정) ‘두루두루’(식당 겸 카페) 등도 운영 중입니다. 정부 지원금도 받지 않으면서 이 많은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김 목사가 비결을 들려줍니다.

“사회복지기관과 아동보호기관들은 인건비와 사업비를 확보해야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선한공동체는 헌신과 희생으로 이웃을 섬깁니다. 인건비를 받지 않습니다. 위기 가정이 도움을 요청하면 달려갑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명이니까요.”

박현주(57) 선한공동체 서번트 겸 센터장도 이야기합니다.

“문제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임하고 학대합니다.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방안에서 대소변 보고 자고 먹습니다. 우린 매뉴얼도 없고 돈도 없지만 아이들과 가정이 도움을 요청하면 헌신하고 순종합니다. 돈이든 사람이든 필요하면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10년가량 도움 받던 한 가정이 “아무런 대가 없이 10년 동안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박현주 서번트는 “제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와 사는 철호(15)도 묵묵히 섬기는 소년 중 한 명입니다. 엄마는 떠났고 간혹 나타나는 아빠의 폭력은 끔찍합니다. 철호는 선생님을 죽인다고 위협할 정도로 골칫거리입니다. 3년 동안 철호를 돌봤습니다. 집안 청소를 해주고, 밥 해주고, 목욕탕에도 데려가자 많이 밝아졌습니다. 중학생 철호는 학교 끝나면 쉴터에 와서 놀고 씻고 밥 먹은 뒤에 귀가합니다.

정부와 기관만으로 아이들 못 지켜

김 목사는 날마다 ‘두루두루’에 갑니다. 부천 원미구 도당동에 위치한 두루두루는 지역 기업인과 시민단체 그리고 선한공동체가 합심해 지난해 9월 문을 연 식당 겸 카페입니다.

두루두루에는 하루 40∼50명의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핫초코와 스무디 그리고 밥까지 일체 무료입니다. 아이들은 행복해졌고 동네는 안전해졌습니다. 지역공동체가 복원되면서 크리스마스와 대보름 행사를 함께합니다. 시장과 골목까지 온 동네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김 목사는 “정부와 아동기관만으론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다”면서 “지역공동체를 만들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가출 등의 조기 발견과 보호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중훈이와 은정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훈(19)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네 옥상과 공원에서 노숙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지역 기관 등은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지역공동체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김 목사는 중훈이를 선한공동체로 데려왔습니다. 처음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젠 종종 웃고 이야기도 곧잘 합니다.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루두루는 은정(15)이 치아를 치료해주기로 했습니다. 방치하면 치아뿐 아니라 소녀의 꿈과 희망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두루두루 공동체가 500만원의 치료비 중 50%를, 나머지 50%는 맘씨 좋은 치과 원장님이 부담키로 했습니다. 2년간의 치료를 마치면 소녀는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김명현 목사는
‘대표’ ‘회장’ 직함 없이 감동의 섬김 목회 외길


김명현 목사는 부천 송내어울마당 5층 한 칸을 빌려 주일예배를 인도합니다. 교인은 선한공동체 서번트와 장애인 등 20여명입니다.

십자가도 없고 찬양대도 없는 초라한 예배입니다.

탤런트 출신 임동진(71) 목사 부부는 2015년 초부터 2년째 초라한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말, 담임하던 열린문교회에서 정년으로 은퇴하자마자 이 공동체를 택한 것은 임 목사 제수인 박현주 서번트를 통해 진한 감동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헌신과 말씀의 진리에 흠뻑 빠졌습니다.

CBS ‘새롭게 하소서’ 진행자였던 임 목사는 김 목사에게 출연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학대아동 그리고 장애인을 20년 넘게 섬겼으니 자랑할 게 많을 텐데도 내세울 게 없답니다.

임 목사는 “김 목사의 청빈한 삶과 조용한 인품에 은혜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부터 내내 김 목사를 취재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공동체를 만들고 수많은 사역을 하면서도 대표나 회장 등의 직함이 없습니다. 그냥 서번트입니다. 유명세도 큰 조직도 원치 않는 목자, 작은 자들을 잘 섬기다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목자, 취재는 힘들었지만 참 목자를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가스펠라이터 조호진(시인)·사진 임종진(작가) jongg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