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장모씨는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우크라이나 여성 A씨에게 무심코 ‘친구 신청’을 했다. 장씨의 신청을 받아준 A씨는 끔찍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부모님이 반군에게 살해됐고, 자신만 겨우 탈출해 주한 미국대사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자신의 이모를 만나 달라고도 했다.
A씨에게 호감을 품은 장씨는 이모를 만나러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곳엔 A씨의 이모라는 B씨(31·여), 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외국인 남성 C씨(28)가 나와 있었다. B씨는 장씨에게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아니면 우린 자유가 없다”고 애원했다. C씨는 “A씨와 그의 이모를 구하려면 미화 3만 달러(약 3000만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순간 경찰관들이 현장을 덮쳤다. C씨에게 붙잡혀 있다는 A씨와 B씨를 구하기 위해 장씨가 미리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B씨는 A씨의 이모가 아니었고, 심지어 C씨와 B씨는 연인 사이였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 한국 남성들의 환심을 산 뒤 돈을 뜯어내려 한 ‘사기단’이었다. A씨가 실존인물인지, 한국에 들어와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B씨와 C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이들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허무맹랑한 인질극을 연출해 대한민국 국민의 외국인에 대한 관심과 동정심을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C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기극을 벌인 적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가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황기선 부장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다”며 C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도와주세요” 우크라 女 내세워 가짜 인질극
입력 2016-03-22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