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 “80년대부터 영상·음악 결합하는 작업… 10여편은 기존 영화음악과 다르게 작곡”

입력 2016-03-22 19:26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공연을 위해 내한한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2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LG아트센터 제공

20세기 후반 현대예술사에 미니멀리즘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일으킨 작곡가 필립 글래스(79)가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2003년 다큐멘터리와 클래식을 접목한 ‘캇씨(qatsi)’로 처음 내한한 이후 13년 만이다. 프랑스 작가 겸 영화감독 장 콕토(1889∼1963)의 동명영화를 바탕으로 한 ‘미녀와 야수’는 22∼23일 서울 LG아트센터, 25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된다.

글래스는 2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심취했었다. 작곡가로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찾던 중 1980년대 들어 영상과 음악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면서 “지금까지 40편의 영화 가운데 ‘미녀와 야수’ 등 10편 정도가 기존의 영화음악과 다른 방식으로 작곡됐다”고 밝혔다.

20세기 초 르네상스맨으로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예술혼을 펼친 장 콕토를 존경해 온 그는 ‘오르페’(1993)를 시작으로 ‘미녀와 야수’(1996) ‘앙팡 테리블’(1996) 등 콕토의 영화 3편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글래스는 “영화음악은 대부분 촬영이 끝난 뒤 작곡되기 때문에 배우 연기와 별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미녀와 야수’는 우선 영화 속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고 배우들의 입 모양에 맞춰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었다. 처음엔 생각만큼 작업이 정교하지 않아서 계속 오케스트라 및 성악가들과 연습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60∼70년대 프레이즈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즘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74년 스스로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하고 다양한 음악 작업을 통해 현대예술의 경계를 넓혀왔다. 연출가 로버트 윌슨, 싯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 글램 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 등과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영화에 매료돼 ‘쿤둔’(1997) ‘트루먼 쇼’(1998) ‘디 아워스’(2002) 등 유명 영화의 배경음악을 맡았으며,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에도 참여했다.

“상업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사에서 전화가 걸려오면”이라고 농담을 던진 뒤 “작곡가들에게 오페라나 교향곡보다 다수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 작업이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작업 방식이 유동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앨런, 박찬욱 등 뛰어난 감독들과의 작업은 늘 흥미롭고 나를 자극한다”고 답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동안 박 감독을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예술성에 집중하느라 대중성을 놓친 것과 달리 그는 대중예술과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음악을 전하는) 매체가 달라지면 청중이 달라진다. 수천명 앞에서 이야기할 때와 단둘이 대화할 때가 다른 것처럼, 음악 표현방식을 다양하게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