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비례대표 후보 추천 논란과 관련해 당 중앙위원회뿐 아니라 비대위와도 충돌하는 양상으로 비화됐다. 비대위는 21일 김 대표의 비례대표 후순위 출마를 골자로 하는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김 대표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오전 서울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자신의 비례대표 추천 방식을 ‘비토’한 중앙위와 사전 보고 없이 중재안을 만든 비대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나를 무슨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었는데, 그건 핑계일 뿐”이라며 “(나의) 정체성 문제 때문에 저러는 것인데, 왜 다른 소리를 해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원들을 향해서도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지만 백 퍼센트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가 중앙위와 비대위 모두를 향해 날선 말을 던지면서 김 대표와 비대위 사이 균열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가 ‘비대위나 중앙위가 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선거 결과는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비례대표 후보 추천 과정에서 비대위원들의 추천이 반영됐음에도 비난의 화살이 김 대표에게만 쏠리는 데 김 대표가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모 비대위원이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비대위 중재안을 거부하면서 오후 8시 속개된 중앙위에서는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확정하지 않은 채 시작됐다. 중앙위에서는 김 대표가 추천할 수 있는 비례대표 후보자의 숫자를 놓고 ‘당헌 위반’ 논란이 계속됐다. 당초 비대위는 대표 재량권을 전체 비례대표 후보자 35명의 20%인 7명을 추천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중앙위원들은 당헌에 ‘당선 안정권의 20%’로 명기된 만큼 이를 3명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 논란이 지속되는 사이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진영에서는 김 대표에 대한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승리가 목표다”라고 적었다. 그는 지난 15일 지도부가 이해찬 의원을 공천 탈락시켰을 때 김 대표의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혁신위원으로 활동했던 조국 서울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김 대표 순위는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 예의”라고 적었다. 오전까지도 김 대표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던 주류 진영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문 전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성곤 의원은 “2번이나 14번이나 똑같은 것 아니냐”라며 “순위는 (김 대표에게) 위임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대표는 중앙위가 진행되는 동안 와인을 마신 뒤 잠을 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김 대표가) 늦게 식사를 하고 반주로 한두 잔 정도 와인을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다”며 “김 대표는 중앙위 내용에 관심이 없고 내용도 모른다”고 전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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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21 22:01 수정 2016-03-22 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