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현대상선 처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현대차그룹은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현대상선을 인수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계속 밝혔으나 인수론은 끊이지 않는다. 현대상선 인수론은 21일에도 불거졌다. 현대차그룹 측은 다시 “관심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은 현대상선을 우리 쪽에 넘기는 게 좋을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현대상선 인수가 그룹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인수론의 근거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관계 때문이다. 두 그룹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16년 전인 2000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간의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별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로 살림을 차려 나가고, 정몽헌 회장이 그룹의 주축이던 현대건설과 현대증권 등을 맡았다. 정몽헌 회장의 사실상 승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요즘 두 그룹의 위치는 2000년과는 전혀 다르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와의 합병, 중국과 미국 시장에 대한 과감한 공략 등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좌초, 누적된 유동성 위기와 대북 불법송금 사건과 대북사업 좌초 등을 겪으면서 사세가 축소됐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상선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유일한 그룹이 됐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분리 당시만 해도 현대그룹 직원들이 현대차로 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요즘 상황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2010년 원조 현대그룹의 종가 격인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맞붙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막판 뒤집기로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되자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적통은 현대차그룹이 승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몽구 회장도 현대건설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현대상선 인수에는 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반면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에 사재까지 출연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 계열사다. 게다가 현대상선은 현 회장의 부친인 고 현영원 회장이 일군 신한해운과 합병으로 성장한 회사이기도 하다. 정 회장과 현 회장은 20일 저녁 정 명예회장 15주기에 정 회장 자택에서 만났으나, 현대상선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일단 현대상선 살리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은 2013년 1차 자구안에 이어 지난달 2차 자구안을 발표한 뒤 채권단과 현대상선 자율협약 개시 등을 포함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현대증권 매각, 용선료 인하 협상 등도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두 그룹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계 안팎에서는 한진해운 사례를 거론하며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진해운은 200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 고 조수호 회장의 독자경영 방침에 따라 한진그룹에서 분리됐으나,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2014년 다시 한진그룹에 인수됐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현대상선을 어쩌나… 현대차 쳐다보는 현대그룹
입력 2016-03-22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