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식’은 신인들 무덤… ‘단수·우선추천’은 친박용

입력 2016-03-21 20:58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1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청년독립 새누리당’이란 글씨가 쓰인 흰색 티셔츠를 입고 참석해 다른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공관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동희 윤성호 기자
새누리당이 ‘경쟁력 있는 공천’을 명분으로 계파 갈등을 일으켰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도 저도 아닌 공천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박(비박근혜)계가 밀어붙인 상향식 공천은 ‘정치 신인의 무덤’이 됐다. 친박(친박근혜) 주류의 지지를 받은 단수·우선 추천제는 친박 후보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론조사 경선은 ‘정치 신인 무덤’=비례대표를 포함한 현역 의원들은 21일까지 경선을 치른 66곳에서 무려 47명(71.2%)이 승리한 반면 원외 후보들은 19명(28.8%)만 경선을 통과했다. 탈락한 현역 의원 22명 중 비례대표는 9명으로, 66개 경선 지역에서 탈락한 지역구 의원은 13명뿐이었다.

이번 여론조사 경선은 ‘역대 최악’으로 불리는 19대 의원들을 또다시 대거 20대 국회에 입성하도록 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안심번호를 도입해 일반 국민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인 결과 ‘현역 프리미엄’만 부각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치 신인이 경선에서 현역 의원을 누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겠다는 총선 전략도 현재로선 신통치 않아 보인다. 이날까지 경선을 통과한 원외 후보들은 전직 의원(김성동 백성운 이종구)이나 전 구청장(박성중 이은권 진동규) 출신인 데다 다른 후보들 역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선거구가 합쳐지면서 한꺼번에 출마한 현역 의원 두 명을 차례로 탈락시키는 기염을 토한 점이 눈길을 끄는 정도다.

여권에서는 여론조사 경선의 부작용 때문에 적전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일부 지역에선 경선에서 패한 후보가 같은 전화번호로 중복 조사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재경선을 요구하는가 하면 소송전까지 불사할 태세다.

한 예비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역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오랫동안 지역을 관리해 온 현역 의원이 조직망을 동원해 여론조사에 대비하는 훈련을 철저히 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의 지역구 의원 전환율도 저조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현역 의원 47명 중 비례대표는 이상일 이재영 의원 둘뿐이었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측된 것이었다. 비박계는 상향식 공천 원칙만 밀어붙였지 공정하게 이를 실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못했다. 당 보수혁신위원회가 지난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전제로 ‘현역 당협위원장은 총선 6개월 전까지 사퇴한다’는 안을 마련했지만 오픈프라이머리 무산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친박 후보 등용문’ 된 단수·우선추천=친박 주류는 총선에서 이기려면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전략공천 폭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이유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물갈이론을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계파 이득을 노린 것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단수·우선추천 지역에서 친박 후보들이 대거 공천 티켓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박종희 전 의원과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유영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손수조 전 당협위원장 등이 이를 통해 본선으로 직행하게 됐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단수추천을 받아 현역인 류성걸 의원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김희국 의원이 경선에서 배제되면서 비교적 수월한 경선을 치를 수 있었다.

당내에서는 계파 간 공천 싸움으로 잡음만 커지면서 유리했던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는 우려도 커졌다. 영남권 한 중진의원은 “당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데 이번 공천은 명확한 근거나 원칙이 없는 것 같다”며 “무소속 출마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여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벌써 빗나갔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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