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정치가 희망이다” 보여주고 대단원

입력 2016-03-23 04:02
개인 욕심 버리고 정도 걷고자 했던 김명민표 정도전
정치 혁명 위해 잔혹한 군주의 길 택한 유아인표 이방원
왼쪽부터 ‘육룡이 나르샤’에서 평범한 백성이었으나 조선 건국 역사를 함께 한 가상 인물 변요한(이방지 역), 신세경(분이 역), 윤균상(무휼 역). SBS 제공
팩션(팩트+픽션) 사극 SBS ‘육룡이 나르샤’가 22일 50부작 대장정을 마쳤다. 조선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에 대한 재해석이 돋보였고, 역사에 묻혔지만 결국 역사를 이끌어나간 백성들을 조명한 게 독특했다.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 등의 입을 빌어 어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우리 현실은 ‘막장 드라마급’이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만큼은 정치가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상적인 정치인’ 김명민표 정도전, ‘강력한 군주’ 유아인표 이방원=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육룡이 나르샤는 여섯 주인공의 캐릭터극”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인물 이성계(천호진), 정도전(김명민), 이방원(유아인)과 가상 인물인 분이(신세경), 이방지(변요한), 무휼(윤균상)이 주인공이었다. 드라마는 여섯 명의 성장, 발전, 변화를 꼼꼼하게 그려냈고 정도전과 이방원 캐릭터가 독보적이었다.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한 몫 했다.

‘불멸의 이순신’ 이후 사극을 하고 싶지 않았다던 김명민은 이순신의 그림자를 떨쳐냈다. 김명민은 “대본 속 정도전이 매우 입체적 인물”이라고 했다. 유학자의 신념으로 이상적인 국가를 설계하고, 토지대장을 불태우는 등 파격적인 정치적 액션을 보여주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적에게 농담을 건네고, 개인적인 욕심 없이 가급적 정도를 걷고자 했던 정치인…. 김명민표 정도전은 이랬다.

유아인은 가장 강렬하고 복잡한 이방원을 만들었다. 지금껏 사극에서 이방원은 가혹하고 잔인하고 무서운 인물이었다. 유아인이 그린 이방원도 결국엔 그리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젊은 이방원은 정의감이 뛰어나지만 공명심도 못잖고,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론 솔직하고 정직하다. 유아인의 이방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랬기에 ‘정치 혁명’을 위해 스스로 잔혹한 군주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유아인은 그 과정에서 고뇌하고 방황하고 슬퍼하는 이방원의 모습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정도전과 대척점에 서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저 사내가 좋다”고 하고, 스승과 동생을 직접 칼로 벤 뒤에는 온 몸을 떨며 힘들어했다. 눈빛, 손짓, 턱의 미세한 떨림까지 연기로 표현해냈다.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이나 ‘사도’에서보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연기력 측면에서 ‘30대 배우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와 드라마 속 명장면, 어떻게 달랐나=역사의 비극은 드라마 속 명장면으로 재탄생했다. 캐릭터 특성을 극대화하고 비장미를 강조한 연출로 역사적 사실과 다른 장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팩션 사극이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가공된 스토리는 극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철퇴를 맞고 숨지는 비극은 이방원과 정몽주가 각각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받은 사실과 늘 함께 다닌다. 너무나 익숙한 두 시조를 드라마에서 어떻게 녹여낼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됐었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방원과 정몽주(김의성)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 두 시조를 담아냈다. 말로 풀어낸 시조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극배우 출신 김의성과 유아인이 서로에게 밀리지 않으며 충돌한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동생이자 조선의 첫 세자였던 방석의 죽음에도 상상력이 가미됐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정도전이 이방원의 사병에 살해됐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이방원이 스승으로 모셨던 정도전에게 직접 칼을 꽂는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기 전 둘이 나눈 대화는 이 드라마의 백미로 꼽힌다.

방석의 죽음도 역사와 달리 그려졌다. 실록에 따르면 방석과 그의 동복 형 방번은 유배를 갔다가 자객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이방원이 궁에서 직접 동생을 죽이는 걸로 묘사됐다. 조선 건국 후 유학자들이 숲 속으로 숨어 지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을 만들어 낸 두문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선 학자들을 두문동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방원이 두문동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