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막강 자금력 사채업자 도피 과정 의문

입력 2016-03-21 19:03 수정 2016-03-21 21:41

수십억대 조세포탈과 공문서위조 등 다양한 혐의를 받으면서 수년간 해외도피로 수사망을 피하던 한 사채업자의 소재가 발견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경찰이 바지선을 타고 밀입국하던 이 사채업자를 검거해 그간 지명통보가 이뤄진 수사기관들에 알린 데 따른 조치다. 사정 당국은 이 사채업자가 자신과 남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여권으로 한국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 중이다.

3건의 지명통보

서울중앙지검은 2011년 공문서위조 혐의로 지명통보 조치했던 사채업자 민모(53)씨에 대한 소재발견 보고를 남해해양경비안전본부로부터 접수했다고 21일 밝혔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민씨는 2011년 위조된 여권으로 중국에 입국하려다 공안에 적발돼 강제 추방됐다. 이후 우리 수사기관의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소재가 불투명해지면서 기소 중지됐었다. 지명통보자 소재발견 보고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민씨를 소환하는 등 재기수사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앞서 2009년 민씨는 누진세 등 60억여원을 탈세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압박을 받자 몰래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수년 만인 지난달 중국에서 바지선을 타고 경남 거제 고현항에 밀입국했고, 관련 첩보를 입수한 남해해경이 지난 10일 서울의 은신처에서 잠복 끝에 검거했다. 해경은 바지선 내부에서 민씨의 DNA를 찾아내 밀입국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출국하기 전인 2008년 민씨는 코스닥 상장사 D사의 260억원대 유상증자 가장납입(실제로는 대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자본금이 늘어난 것처럼 회계를 꾸미는 행위)에 관여했다. 당시 혼자서 104억원을 조달할 정도로 민씨의 자금력은 강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씨는 상법위반 등 혐의가 수사기관에 적발돼 이후 결국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몰래 출입국, 한 번이 아니다?

현재까지 선명히 드러난 민씨의 출입국 행적은 2009년 출국, 지난달 입국 등 각각 한 차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의 지명통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정 당국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민씨의 밀출국 과정이 최소 한 차례 더 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민씨가 2011년 중국 상하이에서 위조 여권이 발각돼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직후 같은 해 가을 또다시 한국을 빠져나간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사정 당국은 민씨가 지인 A씨의 여권을 이용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재차 출국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문제의 여권은 A씨와 민씨의 얼굴이 합성된 형태라는 게 사정 당국에 접수된 첩보였다. A씨가 합성 사진을 제시해 국내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여권을 발급받고, 그 여권을 민씨에게 넘겨 곧바로 출국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정황이 원활히 입증되지 못해 민씨는 현재 불구속 입건 상태다. 밀입국사범 검거 사건을 지휘한 부산지검은 남해해경의 구속영장 신청을 한 차례 반려하고 보완 수사를 지휘했다. 여권 위조와 관련한 부분은 증거 확보가 미진했고, 민씨가 자백하는 밀입국 부분만으로는 구속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검찰 판단이었다. 밀입국이 적발되면 외국인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하지만, 내국인은 법정형이 1년 이하로 상대적으로 가볍다.

여권을 찾아라

남해해경은 최근 첩보 속 민씨의 지인 A씨 소재를 파악하고 여권의 발급 및 양도 과정과 관련해 추궁했다. 그러나 여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A씨 역시 여권을 분실했을 뿐 민씨에게 전달한 적이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남해해경은 민씨와 A씨의 출입국 관련 기록을 광범위하게 분석 중이다. 2011년 A씨가 신규로 여권을 발급받았는지, A씨에게 출국 기록만 있고 입국 기록은 없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중국 공안의 추방 조치 이후 민씨가 어떻게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국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거액 조세포탈과 공문서위조 등 혐의에도 불구하고 지명수배보다 낮은 단계인 지명통보가 이뤄진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여전한 의문으로 남는다. 남해해경과 부산지검의 출입국관리법 위반 수사가 끝나면 지명통보를 내린 수사기관들은 민씨의 여죄를 계속 수사해 나갈 예정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