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무죄판결 사례” 공정위 “모르시는 말씀” 눈 부릅… 일감몰기 첫 제재 앞두고 異夢

입력 2016-03-22 04:00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현대그룹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조사 사건의 위원회 상정을 시작으로 총수일가 사익편취에 대한 제재에 착수한다. 재계는 최근 SK의 부당지원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재계가 무리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예정대로 제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자산 5조원이 넘어 오는 4월부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카카오 등 ‘신입’ 대기업들도 공정위를 주목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첫 제재 대상은 현대=공정위는 지난해 5월부터 한진을 시작으로 현대, 하이트진로, 한화, CJ 등 5개 대기업에 대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 계열사는 모두 총수 본인이나 일가가 10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기업이었다. 하이트진로 계열사인 서영이앤티는 박문덕 회장과 박 회장의 장남 태영씨 등 총수일가 지분이 99.91%에 달한다. 지금은 대한항공에 지분을 100% 매각했지만 한진 계열사인 스카이사이버는 조양호 회장의 자녀 3남매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공정위는 이들 5개 대기업이 계열사를 동원해 불공정한 방식으로 조사 대상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고, 총수일가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현장조사는 현대보다 한진그룹이 먼저 시작됐지만, 공정위는 롯데 매각 전 현대그룹이 현대로지스틱스에 일감을 몰아줘 현정은 회장이 부당이득을 편취한 사건을 1순위로 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1일 “한진보다 현대 사건의 조사 착수 시기가 빨랐고, 앞으로도 순서대로 사건이 상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 상정은 조사 대상 기업의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해당 기업에 보내고, 1심 재판 격인 전원위원회의를 준비하는 단계를 말한다.

◇SK 대법원 판결 강조하는 재계=공정위의 움직임에 맞춰 재계는 최근 SK 부당지원 사건의 대법원 무죄 판결을 계기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0일 SK그룹에 부과한 347억원의 과징금에 대한 무효 판결을 내렸다. 재계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SK C&C에 지급한 IT 유지보수 서비스요금이 정상가에 비해 10% 정도 높았던 것을 강조하며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기준을 정립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판결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일감 몰아주기가 총수일가 사익편취와 상관관계가 낮다”는 연구보고서도 내놓았다. 그러나 국민일보가 대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0%대 가격 차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법원은 오히려 이 사건에서 업계 통상의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황 교수는 “대법원 판결의 SK 사건은 부당지원 혐의 사건으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와 기준이 다르다”면서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도 재계의 여론몰이에 “비논리를 논리로 둔갑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계, 왜 민감할까?=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는 현 정부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 사안이다. 총수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가 규제 대상이다. 공정위로부터 제재 받을 경우 과징금도 과징금이지만 총수일가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대검 중수부가 있던 시절 대선 자금 수사 등을 끝으로 총수일가가 징역형을 받을 경우는 사실상 없어졌다”면서 “그에 비해 이번 공정위 제재는 첫 사례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데 대상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재 대상 대기업과 별도로 오는 4월 1일부로 신규 대기업집단 편입이 예상되는 기업들도 공정위와 재계의 이번 힘겨루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산 5조원 이상으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그와 동시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된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카카오, 셀트리온, 하림 등이 유력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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