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원 상당의 컴퓨터를 사기로 마음먹은 회사원 A씨는 지난 7일 중고품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한 온라인 카페를 들락거렸다. 팔겠다고 내놓은 제품 중 하나가 싸면서도 멀쩡해 보였다. 판매자 B씨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안내해 준 계좌번호로 돈을 보냈다. 좋은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샀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카페 홈페이지 한쪽에 있는 검색창이 눈에 들어왔다. ‘사기꾼’의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다. 검색 결과 B씨 아이디는 사기 신고가 접수된 아이디였다.
끊이지 않는 중고 거래 사기
B씨에게 당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A씨는 피해자 중 한 명과 연락이 닿아 단체 채팅방에 초대됐다. 이곳엔 피해자 70여명이 모여 있었다. B씨는 아이디를 바꿔가면서 사기 행각을 벌였다. 컴퓨터와 관련 기기뿐 아니라 유모차 옷 가방 공연티켓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고 글을 올린 뒤 돈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은 일단 각자 인근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하기로 했다. A씨는 서울 광진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판매자가 대포통장을 사용하고 있어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통장 개설지역으로 관할 경찰서가 바뀔 것이니 기다리라.”
답답한 마음에 A씨는 직접 B씨를 잡아보려 했다. 입금 전에 연락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어눌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재중동포인 듯한 목소리의 한 남성은 “한국에 가면 만나서 때려주겠다”거나 “너희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면서 되레 A씨를 희롱했다. 경찰 신고 이후에도 B씨는 여전히 온라인에서 중고 물품을 팔겠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중고 거래 사기사건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된다.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43명에게 최신 휴대전화를 팔 것처럼 속여 1300만원을 빼앗은 김모(25)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지난 1월 부산에서는 굴착기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고 71명에게 1억5500만원을 가로챈 김모(17)군 등 10대 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 9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중국 총책의 지시를 받고 국내에 입국해 사기 피해금을 인출한 혐의로 C씨(23) 등 3명을 구속했었다. 물건을 판다는 글을 올린 뒤 돈만 챙겨 달아나는 수법이 B씨와 동일했다.
왜 ‘도돌이표’인가
온라인 중고 거래 시장은 허술하다. 거래자끼리 얼굴을 맞대지 않고 주로 계좌이체와 택배를 이용하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는 온갖 사기꾼이 들끓는다. 아이디를 시시각각 바꾸거나 IP주소를 우회 접속해 범행하는 경우, 대포폰과 대포통장 등을 사용하는 경우엔 경찰이 범인을 특정하기조차 어렵다.
여기에다 거래금액이 상대적으로 작아 피해자들이 크게 경계하지 않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나 파밍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 금액이 크고 홍보 등 활동으로 경계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인터넷 거래 사기는 피해액이 적어 ‘설마 사기를 당할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중고 거래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제품이 매물로 나오고, 구하기 힘든 해외 직구상품도 등장한다. 오프라인에 중고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온라인 중고 거래 시장으로 몰려든다.
피해가 잇따르자 경찰은 지난해 5월 포털업체 네이버와 함께 사이버 사기피해 예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검색창에 ‘인터넷 사기’를 치면 사기사건으로 접수된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를 검색할 수 있게 했다. 중고 거래가 활성화돼 있는 온라인 카페에 ‘검색 위젯’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피해 예방보다는 ‘사후약방문’ 차원에 그치고 있다.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현재로선 구매자 스스로 ‘안전한 거래’인지 수차례 검증하고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21일 “거래액이 10만원 이상이면 수표를 입금해 당일 인출이 불가능하게 하거나 ‘에스크로(안전거래)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며 “사기 범죄와 연관된 전화번호나 계좌번호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고가 물건은 직접 만나서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직거래를 하는 편이 낫다”고 당부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덕분에 잘 지내”… 피해자 희롱한 중고거래 사기범
입력 2016-03-22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