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주면서 행복했고,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네받을 때 더 없이 큰 보람과 긍지를 느꼈어요.”
18년간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담의사로 말기 환자의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함께했던 고(故) 정미경(57·사진)씨는 생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씨는 1997년부터 서울 금천구 ‘전진상의원’에서 일하며 300여명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왔다. ‘의사의 길은 본래부터 봉사직’이라는 사명을 갖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 따뜻한 동행이 돼 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 탓일까. 정씨는 2년여 동안 유방암 투병 끝에 지난 14일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보령제약은 헌신적 봉사의 삶을 높이 평가해 제32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수상일을 1주일 남겨놓고 눈을 감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씨는 벨기에 출신 간호사로 한국에서 의사가 된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의 권유에 호스피스 의사로 첫발을 디뎠다. 수련의 시절 선배였던 배 원장은 ‘함께 좋은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며 호스피스 전담의사를 제안했다.
전진상의원은 ‘온전한 봉헌(全), 참사랑(眞), 늘 기쁨(常)’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국제가톨릭형제회 소속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등이 운영하는 의료복지기관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75년 문을 연 뒤 진료소와 약국,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유치원·공부방 운영, 재가(在家)노인복지 사업 등을 벌여오고 있다.
정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주변에 호스피스 의사로서 생의 마지막을 봐야 하는 일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환자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때, 가족까지 모두 행복한 모습을 많이 봤다는 말도 자주 했다고 한다.
동료들이 전한 그의 평소 얘기는 이렇다. “처음에 그 절망감은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입원한 말기 환자가 괜찮을까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무뎌졌지만 의사가 불안해하면 환자들도 불안해 한다는 걸 알고 더 힘을 냈습니다.” “6남매의 맏이로 살아왔고, 운 좋게 의사가 되면서 무의촌 같은 어려운 곳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울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우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이죠.”
정씨의 삶은 그 자체로 ‘참된 의사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보령의료봉사상 시상식은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정씨를 대신해 어머니 추선자씨가 상패와 순금 10돈, 상금 3000만원을 대리 수상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300여 말기암 환자의 벗, 그들 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담의사 정미경씨 투병 끝 영면
입력 2016-03-21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