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재호] 거꾸로 본 ‘태양의 후예’

입력 2016-03-21 17:30

지난 주말 8회 연속 재방송하는 KBS 2TV 미니시리즈 ‘태양의 후예(태후)’를 봤다. 어쩌다 방영시간에 짬이 났을 때 설렁설렁 봐 왔던 터라 작심하고 시간을 할애했다. 보는 중간에 검색창에서 태후와 두 주인공(송중기·송혜교)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해보니 무려 8만여건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뭔가 좀 색다른 점을 찾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가상의 이슬람 국가 ‘우루크’의 정체가 먼저 호기심을 자극했다. “터키 종족을 뜻하는 ‘튀르크’도 아니고 ‘우루크’라니….” 검색창에서 확인하니 우루크는 고대 수메르 도시국가였다.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전설적인 영웅 길가메시가 바로 우루크를 127년간 통치한 왕으로 전해진다. 이라크는 우루크에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다.

시청자들도 같은 궁금증을 품어서일까. KBS 2TV는 그날 저녁 ‘연예가중계’를 통해 우루크가 이라크를 모티브로 했지만 외교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어 가상 국가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극 중 발칸반도 끝 미인의 나라로 소개되는 우루크의 환상적 풍광은 그리스 자킨토시섬 나바지오 해변과 강원도 태백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배경 건축물로 자주 등장하는 교회당은 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연상시킨다. 그리스정교회 교회당은 돔 위에 십자가가 있지만 모스크는 돔 주위에 첨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군용헬기를 타고 우루크 주둔지에 착륙한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을 맞이하는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이 머리를 감싸고 어깨 부분을 걷어 올려 두른 스카프는 아랍여성들이 착용하는 샤일라와 흡사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아랍 4개국 순방 당시 아랍에미리트의 그랜드모스크에 샤일라를 착용하고 방문한 바 있다.

응급 후송돼온 무바라트 아랍연합 의장의 수술 여부를 두고 유시진이 의장 경호팀과 총구를 겨눈 상황에서 외친 말은 뇌리에 남는다. 경호팀장이 16억 아랍인의 심장에 칼을 댈 수 없다고 하자 유시진은 “인샬라! 신의 뜻대로 이뤄지겠죠”라고 말한다. 인샬라는 ‘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란 뜻의 아랍어다.

유시진의 엄호 속에 강모연은 의장의 개복수술에 성공했고 의장은 두 사람을 불러 선물로 아랍 어디서나 통하는 만능 명함 두장을 준다. 아랍 최고 권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장면은 22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동생이자 이슬람 최고 성지인 메카 주지사의 주치의를 지냈던 김승학 박사의 간증과 오버랩된다. 감리교 권사인 김 박사는 국왕의 동생이 써준 자필편지를 여행허가서와 함께 들고 사우디의 중요 군사기지인 미디언 땅 시내산을 7년간 12차례 탐사한다. 시내산은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출애굽 이후 여호와께 십계명을 받은 장소인데, 오늘날 정확한 위치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렇듯, 총 16부작 중 8부작을 끝낸 태후는 시청자들에게 무슬림 세계의 편린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슬람 예배의식 등 민감한 사안은 노골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런 제작진의 절제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부담 없이 다가간 것일까.

태후 시청률은 지난 17일 28.8%를 기록했다. 김수현 전지현이 출연했던 ‘별에서 온 그대’의 28.1%를 웃돈 것이다. 동영상으로 동시 상영 중인 중국에선 10억 조회수를 돌파했다. 이런 파죽지세라면 16억 아랍 드라마 시장에서도 한류 대박을 기대해봄 직하다. 재난에서 우루크를 구하고 아랍 최고 지도자의 생명을 살린 ‘송송커플’은 영웅 대접을 받고도 남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할랄푸드와 이슬람국가(IS) 테러 등 국내외 현실은 꽤 복잡하고도 위태로우니 답답한 일이다.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aeho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