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北 비판 소설 ‘고발’ 불어판 번역자 임영희씨 “반디, 佛서 북한판 솔제니친으로 집중조명”

입력 2016-03-21 19:19 수정 2016-03-21 21:25
임영희씨
북한 작가가 쓴 소설 하나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반디’라는 필명을 쓰는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의 단편소설집 ‘고발(La D‘enonciation·표지)’이 그것이다. 지난 3일 프랑스어판 출간 이후 프랑스 언론들이 “북한의 솔제니친이 등장했다”며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일간지 르피가로·리베라시옹, 라디오방송 앵테르·앵포·RFI, 잡지 마리안느 등이 이 책을 크게 보도했다. ‘고발’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임영희(56·사진)씨를 지난 18일 ‘2016 파리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만났다.

-어떻게 번역하게 됐나?

“2014년 한국에서 출판됐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저는 2014년에 이 책을 발견해 번역을 시작했다. 프랑스어판 후기는 프랑스의 북한인권운동가로 유명한 피에르 리굴로(프랑스 사회역사연구소장)가 작성했다.”

-피에르 리굴로는 작가 반디를 ‘북한의 솔제니친’이라는 표현했고, 외국 언론들이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솔제니친이 처했던 상황과 반디가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자국의 정치체제에 반대했고, 국내 출간을 할 수 없어서 외국으로 원고를 내보냈다. 앵테르 방송은 ‘솔제니친의 글쓰기 능력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발’은 드크레센조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한국문학 출판사로 꼽히는 필립 피키에의 ‘한국문학 컬렉션’으로 출간됐다. 임씨는 이 시리즈의 기획자이자 김영하 공지영 김연수 김애란 김진경 등 다수의 한국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번역자이기도 하다.

-‘고발’은 어떤 작품인가?

“선동적인 반체제 작품은 아니다. 매우 문학적이다. 연좌제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가족, 여행의 자유가 없어 어머니 임종도 못하는 아들, 마르크스와 김정일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세 살배기 아기 때문에 추방당하는 엄마 등이 나온다.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주는데,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한국 소설을 오랫동안 번역했지만 ‘고발’만큼 지적인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구성이 너무 훌륭하다.”

-작가 반디는 어떤 인물인가?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1950년생 남성이고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다. 원고를 읽어보면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데, 작가라서 책을 많이 읽은 듯하다. 원래 북한에 충실한 사람이었다가 1990년대 대기근을 보고 북한 체제에 혐오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거주하는 작가가 어떻게 남한에서 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나?

“반디의 사촌이 탈북한 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에게 원고 얘기를 했다. 도 대표가 중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북한 들어가는 길에 원고를 받아오도록 한 것이다.”

-반디가 진짜 북한에 사는 실존 인물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디의 사촌이 한국에 있다고 하나 그의 존재 역시 드러낼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반디가 가공의 인물, 위조된 인물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파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소설을 창작해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반디가 우파의 조작이라면 한국에서 이 소설이 그렇게 철저히 외면당했겠는가? 우파가 어떤 식으로든 홍보를 하지 않았을까?”

-반디가 내보낸 원고를 직접 봤나?

“전체 원고를 봤다. 200자 원고지 600페이지가 넘는다. 원고지는 60년대나 70년대 만든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질이 나빴다. 글씨는 볼펜이 아니라 연필로 썼다. 필체가 굉장히 좋다. 군데군데 괄호를 치고 한자를 병기했다. 원고지는 구멍을 두 군데 뚫어 실로 묶었다.”

-‘고발’이라는 제목은 누가 달았나?

“작가가 원고에 제목을 ‘고발’이라고 써 놨다. ‘반디’라는 가명도 작가 본인이 정한 것이다.”

-반디의 원고는 하나였나?

“아니다. 두 개다. 단편소설 7편과 시 300여편이다.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고발’은 프랑스에 이어 내년 미국과 영국에서도 출간된다. 이미 해외 13개국에 판권이 팔렸다.파리=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