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여성에 수차례 ‘음란쪽지’ 40대 男 ‘무죄’

입력 2016-03-20 21:04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을 ‘직접’ 전달했다면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등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않아 해당 법 조항으로는 죄를 묻기 어렵다는 취지다. 처벌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우려와 함께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상 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기소된 이모(47)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경북 문경의 한 원룸에 살던 이씨는 2013년 11∼12월 옆방 여성의 출입문에 6차례나 음란한 내용의 손편지를 끼워둔 혐의로 기소됐다. 편지에는 성행위를 묘사한 한두 문장과 성기 그림이 들어 있었다.

검찰은 이씨에게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를 적용했다. 1·2심 재판부는 이씨를 유죄로 봤다. 1심은 징역 1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6개월로 감형했다.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도 함께 고지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처벌 조항을 제한해 해석했다. 이씨에게 적용된 규정은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씨와 같이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않은 채 직접 상대방에게 전달한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실정법 이상으로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법부가 법이 정한 범위를 확장 해석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형법학계 일부에서도 사각지대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입법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