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0일 주요 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40여명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1번부터 10번까지 당선안정권인 A그룹과 11번부터 20번까지 당선가능권인 B그룹 명단을 보면 당내 인사, 영입 인사, 외부 인사를 안배한 흔적이 엿보인다. 당내 인사로는 김종인 대표, 이용득 최고위원, 김성수 대변인이 A그룹에 배치됐고, 사무처 당직자 몫의 송옥주 국회정책연구위원도 당선가능성이 높은 13번을 받았다. 문재인 대표 시절 영입한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와 이철희 전략홍보본부장은 B그룹에 포함됐다.
비례대표 제도의 목적은 사표를 방지하는데 있다. 지역구 의원들이 갖지 못한 전문성을 보완하고 각 직능을 대표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후보는 교수들의 비중이 유독 높은 반면 청년이나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겠다는 당의 정체성에도 배치된다. 또 김 대표는 “누가 봐도 1번감이구나 하는 사람을 택하겠다”고 했으나 1번에 낙점된 박경미 홍익대 교수가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더민주는 박 교수를 1번에 배치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자신을 2번에 ‘셀프 공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김 대표는 이번에 당선되면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될 때는 물론 얼마 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국회의원에 관심 없다고 했던 그였다. 당 안팎에서 비례대표 인선에 김 대표의 사심이 작용했다는 얘기들이 나올 만하다. ‘킹’이 되기 위해 ‘김종인 사단’을 만들려고 공천권을 달라고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새누리당이 친박·비박 내분에 휩싸여 있지만 야권도 국민의당 이탈로 더민주의 4·13 총선 전망이 밝은 편이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당 지도부부터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표는 무임승차하면서 피 말리는 박빙의 승부를 벌여야 하는 후보들을 독려한들 힘이 날 리 없다. 더민주가 정체성 시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편에 섰던 김 대표를 영입한 이유는 외연 확대에 있다. 김 대표가 더민주의 총선 승리를 바란다면 20번 이하의 비례대표 순번을 받거나 야당 험지인 서울 강남벨트 출마를 자처하는 게 옳다. 김 대표의 이런 희생적인 헌신 없이 40%에 이르는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뚫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으니 매번 사달이 생긴다. 국민 참여로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하는 의회 선진국의 절차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분명한 건 특정인의, 특정인에 의한 비례대표 선정은 유권자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설] 김종인, 비례대표 2번 받으려고 공천권 달라 했나
입력 2016-03-20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