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날카로운 풍자든 은유적이든 미술은 사회적 메시지 담아야”

입력 2016-03-20 19:53

민중미술 작가 김정헌(70·사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예술행정가로 더 기억된다. 이명박정부의 ‘표적 해임’ 논란으로 유명세를 치른 탓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예술위 위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2008년 12월 임기 1년 반도 안돼 해임됐다. 소송을 통해 대법원에서 해임 취소 판결을 받았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의 서울문화재단에서 이사장을 맡았던 그는 3년 임기를 지난해 봄 마쳤다. 그가 작가로 돌아와 12년 만에 개인전 ‘생각의 그림, 그림의 생각’전을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연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젠 다 잊었다. TV뉴스에도 나와 슈퍼마켓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니…”라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소탈하게 웃었다.

신작과 구작 3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다 명작이지, 뭐. 허허”하고는 신이 나서 작품 얘기를 했다. 대형 작품은 예전 작품을 재활용한 것이 많다고. 십년 전에 그려둔 조선후기 겸재 정선 ‘금강전도’의 패러디 그림에 짜장면을 그려 넣어 명산이 주는 근엄함을 전복시키는 식이다. 짜장면의 이미지도 사진작가 강홍구의 작품을 차용했다.

작가는 적나라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화면에 교차 편집하는 식의 독특한 구성을 통해 관객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유머와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 부제도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그냥 명작전’이다.

그런데 텍스트의 독기가 과거에 비해 순해졌다. 예전엔 직설적이고 노골적이었다. 신작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아몰랑 구름이 떠 있는 수상한 옥상’(2015) 등이 관객을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그는 “홍성담 작가처럼 날카롭게 풍자하는 것도 용기 있고 멋있다. 나처럼 뭔가를 상기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든 미술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메르스 등 요즘 참사가 얼마나 많은가”라고 말했다.

올 들어 민중미술이 급부상하는 시점에 이번 전시가 마련됐다. 얼마 전 서울옥션 경매에도 그의 작품이 나왔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형 그림이 엄청 비싸게 나왔던데”라고 농을 던지며 귀띔해줬다고. 그는 “자본으로부터 조명을 받은 게 썩 환영할 일은 아니다. 작품 가치보다는 상업적 가치로만 재단하니까”라며 “민중미술은 선배세대인 단색화가와 달리 미술이 사회와 관계를 갖고자 출발했던 미술운동이다. 미학적으로, 미술사적으로도 재조명이 됐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4월 10일까지(02-396-4805).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