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話하다] ‘징용 실명’ 독거 할아버지

입력 2016-03-20 18:56
민에스더 시인
불교 신자였던 내가 스무 살에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주님께서는 내게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생수가 가득 담긴 우물 하나를 선물해주셨다. 그때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분이 만나게 해주시는 영혼들을 찾아갔다.

이봉진(작고) 할아버지가 바로 그중 한 분이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활주로 공사를 하던 중 다이너마이트가 터져서 실명하셨다. 23세 젊은 나이에 두 눈을 잃은 그는 절망하여 한국으로 귀향하는 배 안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 그조차 실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느 해 성탄절. 청각장애를 가진 소년에게 선물을 주러 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홀로 사시는 집을 얼핏 본 후로 성령께서 계속 이 할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마침내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외롭게 홀로 살고 계신 할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후로 이봉진 할아버지는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저녁예배까지 참석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셨다. 결혼 후에도 17년간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고 지냈다.

사진은 남편과 당시 네 살이던 큰아들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 가서 청소, 빨래를 하고 작별하기 전 찍은 것이다. 할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저 집 문 앞에 서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할아버지가 사셨던 저 집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할아버지는 천국에 가셔서 만나볼 수 없지만 나는 안다. 내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면 이봉진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달려오셔서 나를 반가이 맞이해주시리라는 것을.

필자 약력=△시인 △한·영 시집 ‘삶에 지친 그대에게’ 등 △내면치유사역자 △대전 ‘행복이 넘치는 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