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미소

입력 2016-03-20 17:32

서울 삼청동에 있는 ‘미소’라는 이름의 간판이 달린 밥집에 드나든 지도 벌써 20여년이 되어 간다. 춘하추동 계절이 바뀔 때 겨우 한 번씩 들를까 말까 해 식당 주인 입장에서 보자면 딱히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도 아닌데 나도 밥집 주인 부부도 서로를 단골집, 단골손님으로 생각해오고 있다. 살다 보면 그렇게 경제적 측면으로만 헤아려지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정신없이 야근하다 돌아가는 배고픈 귀갓길이나 누군가와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술잔을 함께 기울여줄 사람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을 때, 그럴 때 나는 그곳에 가곤 한다. 가면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간절하게 고팠던 인간의 체온과 정이 느껴져 내내 미소를 짓게 되니깐. 그렇게 서로를 쓰다듬어 주는 배부르고 따뜻한 시간이 또 험한 세상을 살아낼 희망을 충전해주기도 하니깐.

춘분이다. 내일부터 낮은 더 길어지고 바람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처럼 환한 봄의 미소를 보기 위해 누구는 광양 매화꽃을, 누구는 구례 산수유꽃을, 누구는 충북 괴산 세계 멸종위기 희귀식물인 천연기념물 미선나무 꽃을 보러 갈 것이다. 달려가 세상살이의 온갖 시름과 번뇌를 내려놓고 그저 꽃물결에 취해 또 한세월 살아낼 추억을 충전할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한 가수도 있었지 않은가!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보러 가 서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꽃처럼 바라보다 돌아오는 것. 그렇게 환하고 눈부신 꽃구경 사람구경하는 꿈을 꾸다 일장춘몽처럼 사라지는 게 삶 아닌가. (좀 오버인가?)

어제는 재래시장에 갔다가 만원에 다섯 켤레 하는 꽃무늬 양말 열 켤레를 사 왔다. 어쩌다 찾아가 배고프다고 하면 친정에 다니러 온 딸처럼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어주고 그러고도 모자라 혼자 온 게 안쓰러워 마주 앉아 노릇노릇 구워진 굴비의 뼈까지 발라주는 꽃보다 더 예쁜 꽃 보러 꽃무늬 양말 들고 나도 조만간 삼청동에 다녀와야겠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