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권력투쟁의 허망함

입력 2016-03-18 17:38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를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홍 결과는 총선 이후, 그리고 내년 대선을 전후한 한국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게다. 왜냐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구·경북(TK)에서 확고한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걸 맹목적 지지라는 표현으로, 또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다소 떨떠름하게 인식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정치적 힘을 내리 깎지는 못한다. 유승민 사태의 결말에 따라 TK 및 수도권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것이 대선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큰 관심이다.

1990년 3당 합당이 되자마자 민주자유당에서는 대선 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TK 중심의 권력 핵심 민정계가 신TK와 구TK로 분열됐다. 민주계 김영삼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구TK는 김윤환 의원이 앞장서 김영삼 후보추대위원회를 결성했다. YS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며 격하게 반대하던 신TK에는 박철언 김복동 의원 등이 있었다. 이들의 싸움은 대단했다. 권력 기관들까지 동원돼 공작과 협박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결국 YS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구TK가 승리했다. 정치 보복도 뒤따랐다. 신·구 TK의 권력 다툼은 쪼그라진 채 JP가 창당한 자민련으로 무대를 옮겨 잠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권력 중심 TK끼리의 패권 다툼은 길게 잡아봐야 노태우정권인 1990년에 시작돼 DJ가 당선된 해인 1997년까지였다. 온 나라를 뒤흔드는 싸움이었지만 몇 년 못 가 의미 없이 사라졌다. 그런 권력 게임이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들끼리 한판 거하게 펼치고 누리다가 물거품처럼 없어진 것이다.

친박 진영의 TK 내 ‘진박 공천’ ‘비박 제거’를 레임덕 방지와 다음 정권 창출 영향력을 위한 것이라고 얘기들을 한다. 여권 권력 내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측과 밀려나지 않으려는 측의 싸움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역사는 반복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다음 대선이 끝난 뒤 지금의 TK 권력 투쟁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