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어른께는 숟가락이 아닌 수저를 드립니다

입력 2016-03-18 20:00

‘수저’는 숟가락(숟갈)과 젓가락(젓갈)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그냥 숟가락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는데, 높임말이지요. 어른께는 수저를 드려야지 숟가락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수저는 식사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어른이 수저를 드시기 전에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어른 공경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중세국어에서 숟가락은 ‘술’, 젓가락은 ‘져’였는데 둘이 합해져 수저가 된 것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직후 언해(諺解,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 작업이 활발했는데 ‘두시언해’ ‘월인석보’ 등 언해서에 ‘수져’가 나옵니다. ‘밥 한술 못 떴다’같이 지금도 ‘술’이 쓰이지요.

수저는 한자어로 시저(匙箸)인데 수저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숟가락인 匙는 비수 비(匕)가 들어 있어 짧은 칼 형태임을 알 수 있고, 밥 열 술이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조금씩 합력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뜻 십시일반(十匙一飯)에 나옵니다. 젓가락인 箸는 대 죽(竹)이 들어 있지요? 대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저가 ‘계급’이 되었다지요. 금수저에 훨씬 못 미치는 많은 사람을 왜 흙수저라 하나요? 금수저가 금수저가 못 된 쪽을 흙수저라 하는 것, 흙수저가 스스로 흙수저라 하는 것,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는 ‘흙’에 대한 모독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