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년들의 왕국’(3월 24일∼4월 10일 게릴라극장), ‘보도지침’(3월 26일∼6월 19일 수현재씨어터),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3월 29일∼4월 14일 세종M씨어터). 3월말 서울에서 잇따라 공연되는 연극 3편의 공통점은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35)이 대본을 쓰거나, 각색을 했다는 점이다.
‘늙은 소년들의 왕국’은 비극의 대명사 리어왕과 희극의 대명사 돈키호테를 21세기 한국의 서울역으로 함께 불러난 블랙코미디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의 언론 통제를 소재로 한 법정드라마이고, ‘헨리 4세’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왕자와 폴스타프 중심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따라서 3편 모두 색깔이 다르다.
극단 ‘걸판’을 이끄는 오세혁은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올리는 동시에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극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발한 소재와 유려한 대사, 그리고 따뜻한 웃음이 장기인 그는 이달 막을 올리는 3편 외에 여러 작품의 대본을 쓰고 각색을 맡았다. 18일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그는 “작업 자체가 재밌기도 하지만 극단 운영을 위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며 “우리 극단이 연극계에서 드물게 단원 월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단원 30명이 모두 쉬지 않고 일한다. 지난해 공연 횟수가 무려 188회로 이틀엔 한 번 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기존 레퍼토리를 꾸준히 돌리는 한편 극단 안에 ‘걸판X’라는 팀을 만들어 창작 작업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11년 신문사 2곳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며 연극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2005년부터 경기도 안산에서 ‘걸판’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지역에 극단 근거지를 두고 오랫동안 노동극에 천착한 탓에 주류 연극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마당극 형태의 노동극을 가지고 전국 노동현장을 쉴 새 없이 다녔다. 삶이 팍팍한 노동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며 “그런데 단원들이 연극의 중심지인 대학로 무대에도 서고 싶어 해 공연 기회를 주는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세혁은 한양대 입학 후 풍물패 동아리 선배들과 봤던 마당극 ‘대한민국 김철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학을 중퇴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걸판’을 만들어 세상과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혈기만으로 연극을 시작했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이만큼 성장한 것 같다”며 “신춘문예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평론가 장성희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했고, 2012년 남산예술센터 상주작가로 뽑혀 기고만장 할 때 평론가 조만수 선생님 덕분에 제 희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많이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연극 교사는 국내·외 극작가들의 희곡집 및 거장들의 고전문학이다. 이들 작품을 다시 한번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각색 작업에 새롭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 오세혁은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대가들의 어깨에 올라타서 제 이야기를 슬쩍슬쩍 넣는 작업이 너무 재밌다. 이런 각색은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연극 인생의 멘토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이다. 이윤택은 한국 연극계의 원로들 가운데 단원제의 극단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하며 작품을 올리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힘들 때마다 연희단거리패가 있는 밀양이나 김해 도요에 내려가 이 선생님을 뵙고 온다. 선생님이 배우들과 작업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힘을 받는다”며 “연극에 대한 이 선생님의 변함없는 열정과 흥분은 늘 본받고 싶다”고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극단 ‘걸판’ 극작가·연출가 오세혁 “극단 안에 ‘걸판X’ 팀 만들어 창작에 적극 나설 예정”
입력 2016-03-2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