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칡과 등나무

입력 2016-03-18 17:40
등나무. 위키미디어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9단의 패배가 아쉬운 것을 떠나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불편한 마음과 찜찜함이 동시에 들어선 듯하다. 기계적 논리만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감성적 직관력을 지닌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일이 늘어날 것이고, 어느 순간 이들이 인류의 능력 한계를 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AI의 허를 찌른 거침없는 도전에 심적 갈등이 인다.

갈등이란 내면의 정신적 세계에서 각기 상충되는 방향의 두 힘이 충돌되는 현상을 말한다.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면서 힘겨루기는 고통을 잉태한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에게 있어 개체 간 갈등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나 극복된 갈등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질서나 기준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갈등이 반드시 소모적이라 보기 어렵다.

갈등이란 칡을 의미하는 ‘갈’과 등나무의 ‘등’자가 합성된 단어로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이 두 식물은 숲의 가장자리에서 이를 감싸는 망토군락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여러해살이 콩과 덩굴식물에 속하는 먼 친척지간의 식물종이다. 줄기가 스스로 직립하지 못하고 지면을 기어가다 의지할 데가 생기면 이에 기대어 위로 오르는 공통점을 지니나, 칡은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으며 올라간다.

감는 형태가 다른 것처럼 이들의 서식 환경도 다르다. 칡은 우리나라, 만주 및 일본의 냉온대지역에서 넓게 서식하나 등나무는 따뜻한 난온대지역에 분포한다. 그리고 미소서식 환경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자연에서 이들이 만나 ‘갈등’을 유발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어찌 보면 갈등이란 이해가 상충됨을 의미하기보단 해결이 어렵다는 것에 무게를 둔 비유인지 모르겠다. 오르기 위해 감는 방향이 서로 다른 ‘갈’과 ‘등’이 엉키면 이를 푸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가는 얽히고설켜 치솟는 소모적 갈등이 비등하다. 이에 비하면 알파고가 준 심적 갈등은 생산적이랄까.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긍정적 울림을 남겼으니 말이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