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만명 리스트’를 보유한 성매매 조직 103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단일 조직으론 국내 최대 규모다. 이들은 서울 강남의 다가구주택을 2, 3개월 단위로 옮겨 다니며 단속망을 피했다. 경찰을 상대로 뇌물을 주고 성상납을 하는 등 ‘관작업’도 했다.
경찰은 총책 김모(36)씨 등 6명을 구속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리스트에 있는 성매수 남성 대부분을 특정하지 않은 채 마침표를 찍어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강남 일대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김씨 등 6명을 구속하고, 인터넷 채팅 요원(일꾼)과 성매매 여성 등 9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은 2014년 2월부터 올 1월까지 한 번에 20만∼30만원을 받고 5000회 이상의 성매매를 알선해 13억원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성매수 남성 7명과 뇌물을 받은 경찰관 3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박스장, 운짱, 일꾼 등 역할 분담
일꾼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성매수 남성을 유인했다. 쪽지로 연락이 오면 휴대전화 번호 등을 얻어냈다. 인터넷 검색으로 경찰이나 ‘블랙리스트 손님’이 아닌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검거된 일꾼 56명 가운데 고등학생도 있었다.
총책(박스장)은 운전기사(운짱)와 성매매 여성을 약속장소로 보냈다. 성매매 여성은 받은 돈의 반을 운짱에게 줬다. 박스장과 운짱, 일꾼은 강남의 카페 등에서 모여 각자 몫(박스장 15∼20%, 일꾼·운짱 30∼35%)을 정산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고객의 성격이나 직업 등 추가로 알아낸 정보도 건넸다. 이런 고객 정보를 ‘성매매 리스트’에 등록했다고 한다.
총책과 일꾼들은 2, 3개월 간격으로 강남의 다가구주택을 옮겨 다녔다. 김씨는 조직이 커지자 하부 조직원인 중·고교 동창 심모(36)씨 등 5명에게 조직의 일부를 떼어줬다. 심씨 등은 각자의 ‘박스’(성매매 조직)를 운영하면서 박스끼리 성매매 여성을 공유했다. 39명의 성매매 여성 중에는 대학생 6명도 있었다.
경찰 상대 ‘관작업’도 해
이들 조직은 대관업무인 ‘관작업’도 했다. 조직원 조모(42)씨는 2013년 11월 김씨가 단속에 걸리자 강남경찰서 김모(52) 경위에게 잘 봐달라며 300만원을 건넸다. 2014년 8월엔 심씨가 단속되자 서초경찰서로 옮긴 김 경위에게 400만원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도 김 경위에게 50만원을 줬다. 김 경위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조씨는 2014년 서울경찰청 소속 김모(45) 경위와 정모(43) 경사에게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주거나, 단속에 걸렸을 때 무마·축소해 달라며 성접대를 했다. 두 경찰은 성접대를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세 경찰관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뇌물을 받은 김 경위의 경우 금품수수 정황이 뚜렷하지 않아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
리스트는 ‘미궁’ 속으로
‘22만명 리스트’는 결국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게 됐다. 리스트에는 경찰이나 전문직 종사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초기부터 리스트를 수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찰 관계자는 “채팅만 한 사람이나 성매수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며 “모두를 수사하는 것은 수사권 남용이나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했다. 경찰은 리스트 대신 총책 김씨 등이 작성한 수기장부 8권에 집중했다.
또 경찰은 성매매 여성의 휴대전화 기록을 바탕으로 지난 1월 성매매를 한 이모(42)씨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외엔 성매수 남성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 계획이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성매수 男 7명만 처벌… ‘22만명 리스트’ 묻히나
입력 2016-03-1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