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분노로 인한 범죄와 자살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돼

입력 2016-03-17 17:28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17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현대인의 분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공동 심포지엄은 분노(충동)조절장애와 그 폐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국민건강보호위원회는 이 심포지엄을 계기로 분노 폭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분노를 승화시켜나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캠페인 등을 펼치기로 했다니 앞으로 기대가 크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폭력, 존비속 살해,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보복운전, 데이트폭력 등은 모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성 행동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분노조절장애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흐르면 타인을 향해서는 살인과 같은 범죄로, 스스로에게 향하면 자살과 우울증, 울화병, 약물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만연한 분노로 인한 인명 희생과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충동조절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최근 5년간 30% 늘어 2013년에는 4934명에 달했다.

그렇지만 분노조절장애를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인식, 노력은 놀라울 정도로 미미하다. 하루 약 40명이 자살하는 한국은 자살률이 2013년까지 10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다. 반면 우울증 치료제 소비량은 1000명당 20 DDD(의약품 하루 소비량·2013년 기준)로 28개 조사국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OECD 평균 항우울제 소비량은 58 DDD로 우리나라의 2.9배다. 자살예방 관련 정부 예산도 연간 8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하루 13명가량의 사망자를 내는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쓰는 연간 4000억원의 정부예산에 비해서도 너무 초라한 규모다.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이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커진 가운데 치열하고도 불공정한 경쟁을 겪으면서 억울한 손해를 당한다는 피해의식, 즉 무엇보다 불공정함의 인식과 좌절감이 우리 사회를 분노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르는 사회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법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경쟁의 패배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대와 심리적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은 의학적 치료와 인문사회학적 접근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 지역사회, 종교단체, 비정부기구 등이 구성원의 분노를 흡수하는 완충작용을 해야 한다. 신뢰와 소통이 가능한 대인관계가 많이 생기도록 소규모 모임을 활성화하고, 타인과의 다름을 수용하는 관용성에 대한 교육을 각급학교에서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