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멜로, 그리고 치매 연기 어려웠어요”… ‘화려한 유혹’서 할배파탈로 사랑 받은 정진영

입력 2016-03-17 21:09

복잡한 인물이었다. 악역인가 싶은데 아닌 것 같고, 어이없게도 하지만 설레게도 했다. 자식뻘인 최강희(신은수 역)와의 멜로는 20대 시청자들에게도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할배파탈’(할아버지+옴므파탈).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 출연한 배우 정진영(사진) 이야기다.

50부작 통속극 ‘화려한 유혹’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정진영이 맡은 강석현은 종영을 앞두고 극중 사망했다. 이렇게 드라마 출연을 마무리 지었지만 강석현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고 한다. 정진영을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진영은 ‘화려한 유혹’에서 돈과 권력을 거머쥐고도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강석현을 연기했다. 하지만 자식뻘인 신은수를 아내로 맞고, 첫사랑을 닮은 젊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변하는 인물이다.

설정만 놓고 보면 ‘막장’이다. 정진영도 이 작품을 선뜻 선택하지는 않았다. “4부까지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고 출연을 거절했는데, 작가님을 만나게 됐죠. 대본에 묘사 안 된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들었어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복잡하고 깊은 인물이라고요. 그 복잡함이 긴장감을 가져갈 거라는 말을 듣고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강석현은 복잡한 인물이다. 딸과 같은 여성과 멜로를 그려냈고, 치매 연기까지 해야 했다. 멜로도, 치매도 어려웠단다.

“치매라고 하면 보통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많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치매에 걸리는 건 알고 있었는데 경험해본 건 아니었으니까 표현해내는 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석현에게는 치매 자체도 멜로였어요. 치매 증상을 보일 때면 그 끝이 항상 은수에게 맞닿아 있었거든요. 그런 복합적인 부분이 되게 어려웠죠.”

그의 멜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흰머리가 성성한 70대 노인이 30대 여성을 사랑한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깊고 진지한 연기는 시청자들을 설득시켰다.

“최강희씨와 결혼하는 설정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반신반의했어요. 이게 잘못하면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요. 제 연기에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절하게 감정을 표현하려고는 했어요.”

그의 멜로 연기는 설득을 넘어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할배파탈’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수 있었다. 70대를 연기했지만 슈트가 잘 어울리는 모습도 노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대중에 알려진 작품을 연기한 게 18년. 하지만 이렇게 묘한 별명까지 얻은 경험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제가 나왔던 드라마를 시청자 입장에서 바라보니 새롭네요. 일부러 마지막 대본도 읽지 않았어요. 저도 결말이 궁금합니다. 강석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 연기했기에 시청자들의 성원에 감사할 뿐입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