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세상에 난리가 났다. 여당 야당이야 늘 싸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총선이 다가와 공천과정에 있는 지금,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사분오열돼 다투고 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는 말들이 가지를 쳐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분열의 줄기들이 뻗어나가면서 패싸움을 벌인다. 남한과 북한이야 늘 대결하고 있었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야기된 현 국면은 점입가경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전례가 없었던 사상 최대급 규모라고 하는데 그 훈련 중에 ‘결정적 행동’이라는 것은 평양진격 시나리오라고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단지 바둑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싸움으로 세계가 떠들썩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간과 AI의 전쟁이 눈앞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러는 와중에 온 국민의 가슴에 더 큰 못을 박은 사건도 일어났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계속 뉴스가 되어 왔지만 이번 원영이 사건은 그 잔혹성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인간 최후의 보루인 가족이 파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어찌되려 하는지….
그런데 싸우지 않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는 박수와 칭찬과 웃음으로 가득 찼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했을 것이다. 이 행사는 정치와 종교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도전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것이 능사지만 진리를 따라가며 영원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인들이 정치인 앞에서 열광하는 모습은 어리둥절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정치에 대해 참여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강한 자들이 왜곡된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신앙인의 진가가 나타나야 한다. 영웅 다윗에게도 종교인이 등장하는 때는 억울하게 고난을 받아 생명이 위태로운 때가 아니면 왕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를 산 때였다. 어떤 경우에든지 생명을 담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흔히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는 엄격하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는 관대하다. 반대로 돼야 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는 추상같이 엄격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하여는 가능한 너그러워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공격하기 전에 ‘우리’의 문제를 반성해야 하고, ‘우리’의 문제를 들먹거리기 전에 ‘나’의 죄에 대한 회개가 우선돼야 한다.
몰트만은 자신이 속한 주류의 흐름에 일치된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무언가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십자가다.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적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당하게 하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담당해야 할 십자가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로마로부터, 그리고 유대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십자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를 먼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향해 진군할 때 갑자기 칼을 빼들고 마주 선 한 사람을 만났다. “너는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라고 여호수아가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대답한다.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뜻, 진리의 길을 선택할 뿐이다. 월드비전을 설립한 밥 피어슨 박사의 말을 늘 기억하고 싶다.
“하나님이 가슴 아파하시는 것을 나도 가슴 아파하게 하소서(Let my heart be broken with the things that break the heart of God).”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바이블시론-유장춘] “나는 여호와의 편이다”
입력 2016-03-17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