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현실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6-03-17 17:29

이따금 ‘현실을 직시해야죠’ ‘현실 감각이 모자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내 판단이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직시하지 못하고, 때로는 감각하지 못한다는 그 ‘현실’이라는 건 무엇인가?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눈앞에는 모니터가 있고 그 아래에는 자판이, 그 옆에는 펼쳐진 책이 놓여 있는 독서대가 있다. 책상 한 귀퉁이에는 식어서 단맛이 조금 더 진해진 생강차가 담긴 찻잔이 놓여 있고, 저쪽에는 핸드크림 돋보기 이어폰 줄자 볼펜 메모지 휴대전화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너무 익숙하고 사소한 일상의 자리여서 누군가 캠코더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몇 시간 동안 찍어서 보여준다면, 그것은 오히려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몇 년 전에 사려고 했던 집을 포기하지 않고 샀더라면,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사회적 지위, 집, 자동차, 아름다운 물건들을 갖지 못할 때, 그것들을 얻어낼 전략이나 계획이 없을 때, ‘나는 현실적이지 못해서 그런 거야’라는 핑계를 곧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는 게을렀거나 능력이 모자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리 원해도 결코 얻을 수 없었기에 그것은 이미 나의 현실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한동안 피해 다닐 때가 있다. 저항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를 마땅히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보호자가 굶기고 가두고 구타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런 뉴스들로 도배가 될 때,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워진다. 나는 드디어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인가. 이제야 진짜 현실 감각을 획득한 것인가.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