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진정한 부자

입력 2016-03-18 19:54

요즘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상당수는 ‘부자가 되는 것’이라 답한다. 예전엔 대부분 과학자, 의사, 교사 등 일과 관련된 직업을 언급했지만 요즘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희망을 표현한다. 최근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래 희망은 연예인, 공무원, 건물주라고 한다. 고수익과 안정성이 청소년들의 최고 관심사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 사회단체에서 ‘돈 10억원을 받는다면 죄를 짓고 1년쯤 감옥에 가도 괜찮은가?’란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사에 참여한 초등학생의 17%, 중학생의 39%, 고등학생의 56%가 ‘그렇다’고 답했다. 거액을 가질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질러도 상관없고 신체가 속박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개념을 형성한다. 많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물질적 부(富)’는 분명 부모나 밀접한 환경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목격한 ‘부의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나 ‘부에 대한 과도한 추구’가 내면화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모방해 다시 욕망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돈이 무엇이고 어떤 힘을 가졌는지, 잘못 다뤘을 때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막강한 구매력만을 원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임은 오롯이 부모에게 있다. 자녀를 더 좋은 학원으로 보내기 위해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밤낮없이 돈을 더 벌고자 했던 이들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할 정도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부를 가질 때 우리는 이런 달음질을 멈출 수 있을까.

철학자 이진경씨는 ‘진정한 부(富)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자원(돈, 시간, 에너지, 관계 등)을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더 많은 구매력 확보가 아니라 일상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유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절대적 빈민일 수 있다. 또한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부요한 삶을 누리는 이가 ‘진정한 부자’로 살아갈 수 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잠23:4) 미래의 부를 축적한다는 명목으로 현재 주어진 자원들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자녀와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되찾기 위해 ‘바로 지금-여기에서’ 기꺼이 자원을 처분하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부모의 돈걱정 하는 한숨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에 의해 자신의 꿈을 그리게 될 것이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