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부활’

입력 2016-03-18 19:45

충격의 재판 현장이다. 배심원으로 참가한 대지주 네흘류도프. 지금 그의 눈앞에 첫사랑 카튜사가 독살 혐의로 서있다. 그녀의 신분은 유곽에서 몸 파는 여인. 주인공은 군 입대와 함께 향락에 빠져 그녀와의 결혼 약속을 잊어버린다. 배심원들은 코냑에 탄 것은 수면제로 알았다는 카튜사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재판으로 피로해진 탓에 평결 기록에 ‘살해 의도 없었음’을 기록하는 것을 잊는다. 중형 언도와 함께 그녀는 투옥된다. 판결은 누명과 오심의 합작품이다. 마치 보디발 아내의 누명으로 강간미수범이 된 요셉을 보는 듯하다.

무엇이 그녀를 죄인으로 만든 것인지 탐색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살려야 한다. 아리땁고 순수했던 카튜사의 옛모습을 다시 찾아야 한다. 카튜사를 찾아가 사죄하고 그녀의 누명을 벗긴 후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차가운 카튜사. 교도소의 모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들은 굶주림, 법의 무지, 오심의 희생자들이었다. 가난이 범죄자를 양성한 것이다. 법은 가난한 자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순간 주인공의 머리에 헨리 조지의 논문이 떠오른다. 논문은 신명기 말씀대로 인간은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채무의식을 느낀 주인공은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다.

주인공은 두 번의 망각을 속죄하고 싶었다. 카튜사를 잊은 것과 평결서에 무죄를 기록하지 않은 일. 혼신을 기울여 항소했지만 기각된다. 그리고 카튜사와 함께 시베리아행 기차를 탄다. 네흘류도포의 도움으로 그녀의 영혼은 변화되었지만 카튜사가 결혼의 손을 내민 상대는 시몬스였다. 그는 가난과 소외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적인 소식. 카튜사의 무죄 판결.

주인공은 죄인인 인간이 인간의 죄를 다룬다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인간의 법률이 약자의 아픔은 눈감아 버리고 강자의 불의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왕 다윗의 간음과 살인죄를 가차 없이 꾸짖으신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법정에서 카튜사와의 재회가 주인공을 불완전한 법과 부조리한 현실에 눈뜨게 했다면 그녀와의 작별은 그의 시선을 제도가 아닌 인간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죄인은 죄를 처벌할 자격도, 죄를 제거할 능력도 없기에 이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오직 인간의 부활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결말에서 부활한 자는 누구인가. 카튜샤인가 네흘류도프인가. 톨스토이가 부활한 사람으로 설정한 인물은 죄짓지 않은 카튜샤를 죄수로 만든 장본인이 자기라는 죄책감을 떠안고 여기에서 해방되기 위해 몸부림 친 네흘류도프가 아닐까. 이 땅에서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서로 용서해야 하며 불완전체인 인간이 참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찾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필자는 최근 살인미수죄로 징역형을 마친 어떤 피고인이 교회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활’의 소식이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했단다. 살기어린 목소리가 변해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새로운 피조물’로 부활되는 소리로 느껴졌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통해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회로부터 도움 받지 못하는 약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 때 교회가 진정한 부활을 체험하게 되고 세상 곳곳으로 그 부활의 빛이 전해진다는 사실이 아닐까. 소설 속 네흘류도프처럼.

박상흠 변호사 <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