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공권력·폭력 조직 유착해 온 역사 살핀다

입력 2016-03-17 20:02

철거 현장이나 노사분규 현장에서 용역 깡패들이 ‘활약’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들은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현장을 지배한다. ‘용산 참사’는 극적인 사례다. 경찰은 시민과 깡패들의 대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딴전을 핀다. 폭력을 고발해도 법적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민주화된 나라에서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가? 누가 그들의 폭력을 용인하는가?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경찰이나 구청, 기업 등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국가는 왜 시민에게 범죄적 폭력을 수행하는 집단들과 공모하는가?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는 이 질문을 파고든다. 책에 따르면, 한국에서 공권력과 조직 폭력의 공모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이후 좌우익 대결,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정치권력들은 범죄와 폭력에 관여한 조직들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정치권의 사주를 받고 폭력과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은 ‘정치 깡패’로 불렸다. 김두한, 서북청년회 등이 특히 악명을 떨쳤다.

국가는 폭력의 배타적 점유를 특징으로 한다. 공권력은 가장 압도적인 무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찰, 사법부, 정보기관 등을 동원하는 국가의 직접 폭력은 점차 시민들의 저항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범죄조직을 ‘용역’으로 고용해 철거나 노동 억압 같은 ‘더러운 일’에 사용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 책은 민주화 이후 국가의 공권력 행사가 민간의 폭력 조직에 외주화 되는 이유가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커가는 것에 대응한 국가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분석한다.

국가와 폭력 전문 집단이 강제 철거와 노동 억압 시장에서 협력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런데 왜 유독 강제 철거와 노동 억압인가? 책은 그 답을 중산층에서 찾는다. 철거와 노동은 모두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안녕과 관계가 있고, 중산층은 이 두 분야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방관 내지 용인해 왔다는 것이다. 또 공권력에 의한 직접 폭력은 민주화 이후 침묵하고 있는 중산층을 깨워 다시 연합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민간의 범죄 조직을 이용하면 국가는 폭력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중산층은 계속 침묵을 지킨다.

이 책은 공권력과 폭력 조직의 유착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국가의 폭력 행사 방식이 민주화 이후 범죄 조직으로 외주화되었고, 그것이 정치권력의 중산층 관리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은 탁월하다. 이런 연구를 외국인이 했다는 것도 놀라움을 준다. 저자는 미국의 젊은 정치학자로 한국에서 1년간 체류하며 정치인, 경찰, 조직폭력배 등을 직접 만나 이 책을 썼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