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사이다·농약 소주… 그곳엔 ‘메소밀’ 있었다

입력 2016-03-17 04:00

지난 9일 밤 경북 청송군의 한 마을회관에서 소주를 마시던 주민 2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1명은 숨졌고, 다른 1명은 위독한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누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다만 범행수법과 도구는 드러났다. 누군가 맹독성 농약을 술에 탔다. 이 농약은 ‘메소밀’(methomyl)이다.

메소밀은 최근 몇 년 동안 농촌에서 범죄도구로 자주 쓰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농약 사이다’ 사건에도 메소밀이 등장한다. 마을회관이라는 범행 장소, 음료에 메소밀을 탔다는 수법도 비슷하다. 지난해 12월엔 충남 부여에서 70대 노인이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유로 메소밀을 넣은 두유를 이웃집 앞에 몰래 가져다 두기도 했다.

메소밀은 심각한 독성 때문에 이미 4년 전에 제조와 판매가 중단됐다. 그런데도 메소밀을 악용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두 번이나 회수에 나섰는데도 왜 공공연히 시중에 나도는 것일까.

치사율 50% ‘살인농약’

메소밀은 주로 진딧물 방제에 쓰이던 원예용 살충제다. 독성이 강해 몸무게 50㎏ 동물을 기준으로 체중의 0.000026%에 해당되는 1.3g만 투여해도 치사율 50%에 이른다.

메소밀은 냄새와 색깔이 없어 더 치명적이다. 메소밀이 연관된 인명피해 사건에서 ‘음료’가 빠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음료에 타면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2004년 대구의 한 공원에서 시민 1명이 사망한 사건이나 2013년 충북 보은의 한 음식점에서 콩나물밥을 지어먹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의 범행도구는 메소밀을 탄 요구르트, 간장이었다.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2년 메소밀의 제조·판매를 중단시켰었다. 하지만 그 전에 팔린 메소밀은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농가에 방치돼 있다. 살충효과가 좋아 웃돈을 주고 사는 ‘뒷거래’도 암암리에 이뤄진다. 판매가 금지된 농약을 써도 100만원 이하 과태료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회수에 나서지만…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고독성 농약 회수 작업을 벌였다. 지난해 9∼10월 메소밀을 포함해 9종류의 판매 금지 농약 670병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전수조사가 아니라 자발적 반납이었다. 한 달 뒤엔 고독성 농약 구매자 16만명 가운데 1051명을 추려 방문조사를 하고 655병을 폐기했지만 규모 자체가 작았다.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역농협 2500개와 일반 농약판매상 3000여곳이 있는데 이를 다 조사할 수가 없다”며 “농약 판매기록도 3년밖에 보존되지 않아 유통 경로를 추적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또 있다. 뚜껑을 딴 농약은 보상을 안 해주는 데다 반납하면 1대 1로 다른 농약을 포함한 현물로 교환해준다. 자발적 신고와 반납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청송 ‘농약 소주’ 사건이 터지자 농식품부는 17일 관련 회의를 연다. 메소밀만 대상으로 조사를 해 회수에 나설 방침이다. 보상액도 2배로 늘릴 예정이다. 다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인력부족으로 이번에도 전수조사는 아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경찰처럼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농가를 돌며 위험하니 반납하라고 알리는 수준”이라며 “효율적인 회수가 가능하도록 폐기물을 담당하는 환경부나 경찰의 공조가 절실하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