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보호’ 나선 힐러리… 한국 車수출 타격 예고

입력 2016-03-17 04:02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간) 쇠락한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인 미시간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패배한 뒤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클린턴이 원산지 규정 강화를 들고 나온 건 일자리 부족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의식한 것이다. 민주당의 미시간 유권자 중 60%는 자유무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응답했다. 러스트벨트는 자동차와 철강 등 한때 미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미국의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말한다.

클린턴은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을 45%로 정해놓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기준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수준인 60%대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이 강화될 경우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지만 부품은 인도 등 미국이 아닌 여러 나라에서 조달하고 있다.

클린턴은 지난 12일 오하이오 영스타운에서 유세를 갖고 “미국 시장에서 ‘메이드 인 USA’ 상표를 붙이려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어떤 나라도 미국 시장을 잠식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미국 시장에 철강 제품을 덤핑판매하는 일도 막겠다”고 말했다.

미시간에서 패배한 클린턴이 1주일 만에 치른 ‘미니 슈퍼 화요일’에 인접한 오하이오에서 승리한 것은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의 불만을 읽고 보호무역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 먹힌 것으로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의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TPP도 반대한다고 했다.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국무장관 시절에는 앞장서서 TPP 체결을 주장했으나 대선주자로 나서면서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의 반대를 의식해서다. 그가 당선되고 난 뒤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모르지만 유세기간 중 보호무역 강화 발언은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클린턴은 대통령 직속 무역집행관을 임명해 무역상대국의 불공정 행위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오는 12월 11일 이후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받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클린턴은 이른바 ‘버핏세’를 도입해 부자증세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연 10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해서는 최소 세율 30%를 부과하고, 연 50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해서는 세율구간을 추가해 세율을 4% 인상하기로 했다. ‘상위 1%가 99%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샌더스에게 쏠리는 유권자들과 진보세력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다.

조세회피 목적으로 기업을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 50%의 ‘국적포기세’를 부과한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클린턴이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 TPP 반대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정책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만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보다 적극적 ‘개입과 압박’ 정책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국무장관 출신으로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간 클린턴이 집권하면 한·미동맹 등 기존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시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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