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 지역구 등 4곳만 제외하고 공천을 마무리했다. 유 의원 공천 여부 결정을 또 보류한 것은 그만큼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에는 공천관리위원회가 유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을 거의 탈락시켰다. 그동안 대통령이나 집권 주류 측에 대해 쓴소리를 했거나 정책을 반대했던 중진인 이재오, 진영 의원도 컷오프시켰다. ‘비박계 공천 학살’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하다.
이번 발표 직전에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공관위원인 박종희 사무부총장이 느닷없이 ‘당 정체성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등의 기준을 제시한 것은 누가 봐도 유 의원 등 비박계를 겨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공개 언급한 것과 관련된 공천 기준인 셈이다.
새누리당 주류는 유 의원을 솎아내기로 이미 결정하고 의견 청취 절차를 밟는 분위기다. 탈락한 비박계 의원들의 지역구에는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들어섰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대구 등에서도 역풍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당내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정황을 충분히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TK 민심을 주머니 속 공깃돌 정도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내리꽂으면 찍으라는 것 아닌가. 수도권 민심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천에서 탈락시키려면 겉으로 포장된 정체성 운운이 아니라 국정을 운영할 수준이 안 된다는 점을 들이대야 했다. 여당 강세 지역에서 쉽게 당선돼 편하게 의원 생활 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강세 지역에서는 선거 때 반짝 운동하고 웰빙 생활을 해왔다. 우리 정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에 TK 지역에 출마하는 진박 후보들도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많다. TK 출신 4선의 이 공관위원장도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집권당 의원이 대통령·정부와 함께 국정 책임을 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당 소속이기에 앞서 입법부 구성원이자 헌법 기관이다. 민주정치에서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감시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여당 의원이라고 대통령의 뜻만 따르라는 것은 30, 40년 전에나 통하던 얘기다. 새누리당의 이번 공천 기류라면 여당 의원들은 거수기 노릇만 해야 한다.
공천에는 항상 반발과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걸맞은 명분과 공정성이 있으면 유권자들로부터 신뢰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발도 쉽게 잦아들게 된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때 ‘친박 학살’과 2012년 19대 총선 때 ‘친이 학살’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정치적 행위가 있었다. 이번 여당 공천도 그때와 다를 것이 없다. 다음 선거 때, 아니 총선 결과가 나온 뒤부터 지금 칼을 휘두른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설] 반복되는 여당의 ‘공천 학살’은 유권자 무시한 것
입력 2016-03-16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