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이세돌 세기의 대결이 몰고 온 두 가지] 포털 검색어 1위 ‘바둑’… 유치원에선 놀이 등장

입력 2016-03-16 21:41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이 연일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새로운 바둑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바둑이 어른들의 놀이라는 편견이 사라지고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많은 바둑계 관계자들은 이 9단이 알파고에 패할 경우 그나마 유지되던 바둑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했다. 1997년 체스가 슈퍼컴 ‘딥블루’에게 패하면서 체스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점도 이 같은 분위기에 일조했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이 9단이 패할 경우 닥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9단이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하면서 우려가 현실로 닥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4국에서 이 9단이 인공지능을 휘청거리게 만든 ‘신의 한수’로 승리하면서 반전됐다. 인간이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의외의 능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고, 두뇌개발에 바둑이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음도 보여줬다.

바둑은 80, 90년대만 하더라도 국민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서울에만 바둑교실이 300개가 넘었고, 전국 곳곳에 기원이 산재해 있었다. 89년 조훈현 9단이 세계대회인 제1회 응창기에서 우승했을 때는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90년대부터 젊은이들이 바둑 대신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몰리면서 바둑 인구는 결정적으로 줄어들었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성인 비율은 92년 36.5%에서 2004년 20.3%로 줄어들었다.

이번 대국을 통해 바둑은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창 1위에 올랐다. 유치원에는 바둑 놀이가 등장했고 서점에서는 바둑 인기 서적이 동이 났다. 최근 드라마 ‘미생’과 ‘응답하라 1988’도 바둑의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특히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달아오르고 있다. 웹사이트 ‘바둑 게임 스승’의 에디터 데이비드 오머로드는 “마치 사람이 달 착륙을 시도하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번 대국을 지켜봤다”며 사이트 방문자 수가 최근 20배 이상 늘었다고 소개했다. 중국신문망은 “이 9단의 대국을 계기로 동양문명의 총아인 바둑이 세계무대에서 황금시대를 맞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신문 뉴요커도 “과거 슈퍼컴에 패했던 체스도 당시 일시적인 침체가 있었지만 딥블루와 그를 계승한 체스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체스계를 망가뜨리기는커녕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바둑 보급에 활용될 여지도 생겼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알파고가 출시되면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바둑 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기호 한국기원 홍보부장은 “바둑이 어른들의 놀이란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번 대국을 통해 바둑이 갖고 있던 매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게 됐다”면서 “이런 호재를 바탕으로 바둑의 재도약을 위한 다양한 사업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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