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국가조찬기도회 설교 이후 논란을 겪었다. 사실 나의 설교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깊은 고심과 연구 끝에 다듬고 또 다듬으며 최대한 균형감을 갖춘 설교를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몇몇 진보 진영의 매체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았다. 설교의 주논지는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역할과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국가조찬기도회의 설교가 대부분 성경 강해식이었다면, 나는 예언자적인 안목을 가지고 시대와 역사를 향한 적용 중심의 설교를 한 것이다.
그래서 조국독립과 근대화에 기여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섬기며 통일의 꽃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다시 본질을 회복하고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도 뜻을 달리하는 분까지 품어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목회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를 했고 대통령과 청중으로 하여금 마음문을 열고 공감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을 칭찬하는 애드리브를 했다. 아무리 좋은 직언도 대통령께서 안 들으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여러 면에서의 선순환을 위해 애드리브를 했고 장내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후 전체 맥락이 아닌 일부분만을 가지고 외국 여성 정치인을 비하했다느니 하면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코 비하하는 마음이 없었다. 대통령을 칭찬하면서 세계의 여러 여성 정치인과 비교를 한 것이다. 내 설교를 비판했던 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당당하게 임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매체에서 연락이 와서 전화로 대답해 주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그것은 가십이지, 본질이 아니다. 특히 소강석 목사는 성경적 내용에 바탕을 두면서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역사의 깊은 연구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고 평하면서 우호적으로 변호하는 글을 실었다. 사실 민주사회에서 비판은 필요하다. 그 비판이 있음으로써 선진 시민문화를 이루고 아름다운 국가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도 예의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의도적인 트집잡기, 악의적인 비판, 빈정거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 전문을 다 읽어보고 균형 있는 비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설교의 본질이 아니라 애드리브를 가지고 트집을 잡고 비판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직 우리의 언론 수준과 비판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어도 좀 더 정화할 필요가 있다. 세레나 루스트가 쓴 ‘기린과 자칼이 춤 출 때’라는 책을 보면 세상에는 두 가지 언어가 있는데 하나는 자칼언어요, 또 하나는 기린언어라는 것이다. 자칼과 기린은 얼른 보기에 비슷하게 생겼지만 언어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자칼언어는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고 상처를 주며 죽이는 폭력적인 언어인 반면에 기린언어는 상대방과 함께 공감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대화이다. 정치·사회·문화예술계 등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폭력적인 자칼언어가 난무하며 서로를 상처주고 죽이려고 하는가.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 국가가 화목하기 위해서는 자칼언어를 기린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이번의 비판도 사실은 서로 잘 해보자고 한 것이고 나 역시 나라와 민족을 섬기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충정으로 한 것이 아닌가.
특히 한국교회는 더 무차별적으로 자칼언어의 공격을 받고 있다. 반기독교 정서와 세력의 의도적인 흠집 내기와 악의적 비난으로 얼마나 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상처를 받았는가. 그럴수록 우리는 기린언어로 자칼언어를 포용해야 한다. 나도 넓은 가슴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했을 때 조금이나마 선순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가 상처와 폭력의 자칼언어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사회를 사랑과 상생의 기린언어로 하나 되게 하자. 기린과 자칼이 서로 이해하며 함께 춤추는 사회를 꿈꾸면서.
소강석(새에덴교회목사)
[소강석의 꽃씨 칼럼] 기린과 자칼이 춤추는 사회
입력 2016-03-16 18:23 수정 2016-03-16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