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이단아’ 하사비스

입력 2016-03-16 17:59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막을 내렸다. 1주일 내내 전 세계의 눈이 서울로 향했다. 승리는 알파고에게 돌아갔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명승부였다. 인간과 기계 대표의 이번 매치에서 이세돌만큼 주목받은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알파고를 개발해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 창업주인 데미스 하사비스(40·영국)다. 알파고를 개발한 지 2년 만에 기계가 넘을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마저 정복하는 능력을 선보였으니 왜 아니겠는가.

중국인 어머니와 키프로스계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체스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남들보다 2년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세계적 게임 개발자 피터 몰리뉴의 회사에 들어갔다. 17세 때는 공전의 히트를 친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를 개발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뒤늦게 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컴퓨터 알고리즘과 인간의 뇌를 연구해보기 위함이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34세 때인 2010년 딥마인드를 설립해 인공지능 알파고까지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어릴 적 게임광이었고 집에서는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고 했다. 스스로를 일반 어린이들과 다른 외계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럼 하사비스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창의적인 혁신가로 성공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적 위주와 틀에 박힌 교육시스템이 그를 옭매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이공계 5개 대학의 연구부총장들이 정량적 지표 대신 연구 자체의 가치와 질적 평가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에는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했었다는 서울대 공대의 통렬한 자기반성 백서가 나오기도 했다. 유연하지 못한 지금의 우리 환경에서는 하사비스도 알파고도 나오기 어렵다.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