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친 남형(12·여)이 발걸음은 어김없이 서울 광진구 뚝섬로 22길 신양하늘꿈지역아동센터로 향했다. 먼저 온 지해(12·여)와 나은(11·여)이는 보드게임 판을 펼쳐놓고 남형이를 맞았다. “여기에 오면 외롭지 않아요. 이것저것 재밌는 것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이유에 대해 남형이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이곳은 서울 신양교회(이만규 목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교회는 지역아동센터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신양교회가 지역아동센터를 세운 데는 교회가 위치한 자양동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자양동은 1950∼60년대 서울역 앞 빈민가였던 양동이 철거되면서 그 주민들이 이주해 형성됐다. 당시 남산 서쪽 기슭에 위치했던 양동 골목은 그 이름과 달리 집창촌이 있던 서울의 음지였다. 자양동의 옛 이름은 새로울 신(新)자가 앞에 붙은 신양동이었다. 1970년 5월 서울시조례 제613호에 따라 자양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삶의 관성에 따른 듯 현재도 이곳 주민들의 상당수는 일용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등 경제적 빈곤층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부모들은 집에서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다. 신양교회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공부방으로 시작했으며 2006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됐다. 대상은 기독교인에 국한하지 않는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목 지도와 더불어 독서 악기연주 레크리에이션 공연관람 등 어린이들의 취미활동을 돕고 있다.
30여명의 자양동 어린이들에게 지역아동센터는 아지트 같은 존재다. 신양초등학교 3학년 선호(9·가명)군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아빠가 안 계셔서 심심했는데 여기(지역아동센터)에 와서 오카리나도 배우고 친구들과 놀 수 있어 재밌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명희(57·여) 신양교회 집사는 “공부방 시절 봉사자로 시작해 현재까지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이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하나님의 일꾼들로 자라도록 양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양교회는 교육을 도구로 활용해 지역사회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외에도 매주 토요일에는 ‘모세스(Moses)’ 주말학교를 열고 어린이들에게 영어·인문학을 교육하고 있다. 영어전문교육기관인 정철어학원에서 발간한 교재를 사용하고 회화능력이 일정수준에 달하면 원어민에게 복음을 30분 동안 전하도록 한다. 또 영문으로 된 어린이 문학작품을 기독교교육과 인문주의교육에 기초해 가르치고 관련 내용을 토론하게 한다.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지역 어린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신양교회가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과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교회엔 악기 요리 등을 가르치는 문화센터가 있다. 매주 300여명의 주민들이 찾는다. 복지·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오세일(44) 부목사는 “문화센터는 교회의 시설과 인적 자원을 활용해 운영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문화센터 강사나 교인 등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교회와 복음의 정신을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한 이 시대에 교회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주민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어서 선교의 접촉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영성치유센터는 병든 이들의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 세워졌다. 국내 유명 심리·정신·영성학자들이 매주 강의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의 급식비를 지원하기 위해 교회의 한 구역 당 지원 대상자 한 명씩을 정해 월 5만원씩 지급하고 격려하는 ‘토닥토닥손’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또 신양꿈하늘장학회를 설립해 교회학교 학생 중 성적 우수자와 지역 내 학생 등 60∼70명에게 매년 5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대상자는 지역 학교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다.
R&D(연구·개발) 투자 역시 신양교회만의 특징이다. 현재 8명의 부목사 중 일부는 교구를 맡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한 목회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모두 신양교회가 목회 영역을 교인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로 확대하면서 생긴 변화다.
이 지역에서 10년 넘게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이재형(67)씨는 “신양교회는 ‘지역과 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라는 인식이 주민들에게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신양교회 이만규 목사
“어려운 이웃 눈에 밟혀… 생명구원을 교회 최우선 과제로”
“목회는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것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광진구 신양교회에서 만난 이만규(사진) 목사의 목회철학은 분명했다. 이 목사는 “생명구원이 교회의 최우선과제이며 구원받은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지역을 섬기는 봉사자로 살아가도록 양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1991년 3월 신양교회에 부임했다. “40대 초반의 많지 않은 나이에 담임목회를 하려니 막막했습니다. 성도들이 공감할 만한 목회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낙후한 지역, 소외된 이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목사는 ‘교회교육 강화’와 ‘지역사회 섬김’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양교회는 교회학교를 주일학교가 아닌 ‘하늘꿈학교’라 지칭한다. 이 목사는 “교회교육은 단순히 성경이나 교리 공부 차원을 넘은 전인교육이어야 하고 이 땅에서의 처세나 성공보다는 하나님나라 백성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전한 교육을 위해서는 교회, 가정, 학교가 통합되는 기독교교육 과정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양교회는 지역아동센터와 문화센터, 모세스 주말학교의 운영과 장학금 지급 등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통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이끌어 냈다. 수혜를 입은 주민들은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고 이는 자연스레 전도로 이어졌다. 현재 신양교회에는 장년 성도 1000여명, 교회학교 학생 40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또 한 예는 2009년 지역재개발이 결정됐을 때 주민들은 교회를 찾아와 이 목사에게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이 목사는 주민들에게 “신양교회는 목사의 것도, 교인들의 것도 아닌 주민들의 것이니 뜻대로 하라”고 답했다. 이 목사는 현재 지역개발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목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지역 섬김’은 사명으로 각인이 되어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신양교회는 지역 주민과 발 맞춰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한국의 공교회-서울 신양교회] 부모처럼 어린이 돌보고 병든 사람은 영성 치유…
입력 2016-03-16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