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명의 만나기까지 켜켜이 쌓인 서러움

입력 2016-03-20 18:17
인생에서 가장 예쁘다는 20대 시절 김순희 씨는 매일 비행기를 탔다. 그녀의 직업은 승무원이었다. 300여명의 승객의 안위를 챙기는 승무원 생활은 고됐다. 올해 막내아들 대학 입학 기념으로 그녀는 얼마 전 생애 첫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동안 몸에 소홀했던 것일까. 검진결과에서 유방에 종양이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순희 씨는 집으로 바로 오지 못하고 병원 대기실에서 한참을 앉아 지난 몇 년을 되짚어봤다고 한다. 공부하지 않고 연극하겠다던 막내아들 때문에 속이 썩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다. 젊어서 비행기를 오래 탄 게 잘못된 걸까. ‘왜 나에게 유방암이…’ 김 씨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는 남편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고 한다. 여성이 엄마로, 아내로 일생을 보내다 다시 제 몸을 돌보기 시작하는 나이가 50대 후반부터다. 다시 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생의 즐거움을 계획하려는 시기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은 크게 낙담한다. 김 씨는 진단 받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서글펐다”고 말했다.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진료의뢰서를 받아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김 씨는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는 살 수 있겠구나…하고 만난 의사는 첫 진료에서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자신의 유방을 가리켜 손으로 자르는 시늉을 했다”며 “잘라내는 손 시늉을 하는 그 의사를 보며 ‘나의 가슴은 암덩어리에 불과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암을 진단받은 모든 사람은 큰 충격과 슬픔을 경험한다. 그러나 유방암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열심히 살았다”는 보상심리로 받은 생애 첫 검진에서 유방암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가족을 위해 헌신의 삶을 택한 여성일수록 유방암 진단은 충격을 넘어선 좌절감을 몰고 온다. 김씨는 “환자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찾아볼 수 없는 의사의 행동에 크게 상심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국 병원을 옮겼다.

최윤화 씨(2015년 12월 유방암 3기 진단) 역시 치료를 시작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김씨의 경우와는 달랐다.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잡아준 것은 의료진이었다. 최 씨는 지금의 의료진을 만나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것, 저것 묻는 환자들이 많아 지겨울 법한데도 항상 나의 물음에 정성껏 답해준 선생님들 덕분에 서럽거나 외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환자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위로가 있어도 괜스레 서글퍼진다. 그런 그들이 의료진의 말 한마디에서 치료에 집중할 용기를 얻는다. 최 씨의 경우가 그랬다. 간호사가, 주치의가 그녀가 상심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유방암 환자들은 마음의 안정이 들기 시작한 무렵을 ‘주치의에게 믿음이 생겼을 때’로 꼽았다. 다시 말하면 ‘믿을만한 주치의를 만났을 때’다. 우리 주변에는 명의가 참 많다. 환자에게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의사와의 첫 만남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우는 환자들도 존재한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