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의 제안-더 나은 노년] 과유불급… 실버 그리고 고혈압

입력 2016-03-20 18:16

75세 여자환자 K씨는 당일 아침부터 발생한 호흡곤란, 간헐적인 의식소실로 응급실로 내원했다. 응급실에서 측정한 혈압은 100/60mmHg. 하지만 문제는 맥박수로 정상인이 유지해야 하는 60∼100회/분에 한참 미치지 못한 35회/분이었다. 즉시 시행한 심전도에서 ‘3도 방실 차단’ 이라는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3도 방실 차단은 심장의 전도장애가 생겨 심장이 느리게 뛰고 심하면 사망할 수 있는 심장내과적인 응급질환이다. 환자는 즉시 심장혈관조영실에서 임시형 심박동기를 삽입하고 정상심박동을 회복하면서 호흡곤란과 의식소실이 호전되었다. 의식을 회복한 환자와 가족에게 문진을 한 결과 부정맥은 최근 새롭게 바꾼 혈압약이 원인이었다. 1일 1회 복용하도록 처방된 혈압약을 기존약처럼 하루 2회 복용한 결과였다. 베타차단제 계통 혈압약의 부작용으로 3도 방실 차단이 발생했고 약물 중단 후 환자의 정상맥이 회복되어 임시형 심박동기를 제거 후 무사히 퇴원했다.

1950년대부터 발달한 심혈관계 질환의 의학적 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추는 치료로 심혈관계 질환의 사망률, 유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시행된 UKPDS라는 연구는 수축기 혈압을 10mmHg, 이완기 혈압을 5mmHg 낮추는 것만으로 뇌졸중을 44%나 감소시켰고 사망률을 32% 낮추어 고혈압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로 실제 임상에서도 고혈압 치료로 인해 많은 심혈관계 질병들을 예방하고 기존의 심질환을 가진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고사성어처럼 지나친 혈압조절로 인한 부작용이 실제 임상에서 매우 흔하다. 위의 두 증례 모두 지나친 혈압조절로 인한 부작용으로 가벼운 어지러움증부터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치명적인 부정맥까지 발생한 경우이다. 특히 두 번째 증례의 기립성저혈압은 외래에서 매우 흔하게 접하는 고혈압 약물의 부작용으로 누웠다가 혹은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어지러움이 특징이다. 누웠을 때와 일어나서 5분 후 측정한 수축기혈압이 20mmHg 이상 감소하거나 혹은 이완기혈압이 10mmHg 이상 감소하는 경우에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있는 고혈압 환자들은 반드시 담당 주치의와 상의하여 혈압약의 종류와 용량에 관해 상담하는 것이 좋다. 혈압을 낮춤으로서 얻는 이득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적절하게 저울질 하는 것이 필요한데 실제로 2014년에 발표된 미국 고혈압치료 가이드라인 (JNC8)에 따르면 65세 노인 환자의 목표 혈압을 150/90mmHg 미만으로 정의해 노인 환자에서 고혈압에 의한 부작용 발생에 좀더 주안점을 두는 양상이다.

노인환자들은 고혈압 약제로 인한 이러한 부작용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노인들은 노화에 따라 신체조성의 변화와 간, 신장기능의 저하에 따른 대사기능의 저하로 복용한 약물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고 동시에 복용하는 다른 약물이 많아 상호작용에 의한 약물의 부작용이 보다 쉽게 나타난다. 또한 노화에 따른 인지능력의 저하로 약물 복용을 잊고 복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위의 첫 번째 증례처럼 반대로 2∼3배 용량의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경우도 있어 주변 가족들이 복용약물을 세심하게 챙기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의료계와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일례로 개인의료정보와 보안이라는 측면에서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국민건강보험 내에서 처방되는 약물 중 중복되는 약물에 대해 타병원의 약물처방기록이 부분적으로 전산조회가 가능한 시스템의 개발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의료계와 몇몇 병원에서 선도적으로 노인들의 특성에 맞는 병원 환경과 시스템을 연구, 개발하고 있어 이러한 노력들이 향후 노령화 시대에 의료계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노인들의 의료의 수준을 변화시킬지 그 변화가 기대된다.

김현중 심장혈관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