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청년문제, 조언보다 지원을

입력 2016-03-16 17:57

‘헬조선’. 한국이 희망이 없는 끔찍한 지옥이라는 뜻이다. 몇 년 전 인터넷에 등장한 이 신조어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유행한 것은 20, 30대 청년들의 절망감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지나친 과장이고 비관’이라며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지만 청년들 입장에 서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고 불투명하고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운 곳이다. 그들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한 푼 두 푼 모아 집 장만해 왔던 기성세대의 청년기와는 판이한 환경에 처해 있다. 기성세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스펙’을 쌓았지만 경쟁은 더 치열하고 나아질 가능성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취업난이다. 2월 청년 실업률이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좋은 일자리 취업은 바늘구멍 뚫기다. 이리저리 도전해 보다 저임금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신규 채용된 청년층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 8월 기준 64%에 달한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등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취업 장벽이 너무 높아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인간관계도 포기한 ‘삼포세대’ ‘N포세대’가 빈말이 아니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첫 세대. 그런 청년들에게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이랍시고 늘어놓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어쭙잖은 조언보다는 이런 현실을 만든 데 대한 통렬한 반성이 먼저다. 청년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성남시가 올해 도입한 ‘청년배당’이나 서울시가 시행하려는 ‘청년활동지원사업’은 그런 노력들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포퓰리즘’이라거나 ‘정부 정책과 중복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고 있어 사업 추진이 순탄치 않다. 사업 예산을 정부에 달라는 것도 아닌데 발목을 잡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청년층에 대한 지원 정책은 적극 권장할 일이지 말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은 사회는 암울하다. 결혼을 포기하면 자연히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국 인구 감소로 경제도 사회도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청년 문제는 복합적이다. 성장의 둔화,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 증가, 경제주체들 간 상생시스템 붕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왜곡된 자원배분, 부의 세습화, 교육과 취업의 연계 부족, 불공정한 세제 정책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각계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울시가 지난 2월 출범시킨 ‘대청(大靑)마루’는 이런 공감대를 모으는 장이 될 수 있다. 이 기구는 ‘대’한민국 ‘청’년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로 다양한 분야·연령층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자리에만 한정하지 않고 주거, 부채, 건강, 복지 등 청년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여러 정책적 수단을 갖고 있는 중앙정부가 관심을 보이지 않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 문제는 부모 문제이기도 하다. 자식이 힘들면 결국 부모가 그 부담을 일정 정도 떠안게 되는 것 아닌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여와 야가 불필요한 신경전 벌이지 말고 속히 청년 문제를 논의할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