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호진]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입력 2016-03-16 17:58

요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신문과 방송은 “인공지능과 인류 대표의 대결”이라며 연일 이 경기를 톱기사로 내보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느새 바둑의 최고수가 되어있는 인공지능을 보며 섬뜩한 느낌을 받은 분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마도 ‘A.I.’나 ‘터미네이터’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인류가 인공지능에 지배당하거나 파멸되는 스토리가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인가보다. 더욱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을 악마에 비유했고,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 가능성을 경고했으니, 알파고가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을 이기는 것을 보고 걱정할 만도 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알파고는 그저 바둑만 잘 두는 기계일 뿐 두려워할 존재는 전혀 아니다. 사람이 하면 1년도 넘게 걸릴 계산을 0.1초면 척척 해내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이러한 컴퓨터 처리장치(CPU) 1000여대를 사용해 수를 미리 계산해 바둑을 두었으니 알파고가 이겼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파고가 사람처럼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이기는 수만 계산할 뿐이다. 또한 알파고가 당장 체스나 고스톱 같은 다른 게임도 현장에서 규칙만 가르쳐주면 바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딥마인드 개발팀이 알파고에 수천만 수를 학습시키는 데 사용한 방대한 양의 프로기사 기보 데이터베이스 같은 것이 먼저 수집되어야 다른 게임도 학습시킬 수 있다. 즉, 게임마다 공들여서 학습용 데이터베이스를 모으고 엔지니어링을 해야만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사람은 어떤가. 체스 같은 게임은 규칙을 배운 즉시 그 자리에서 웬만큼 즐길 수 있으니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컴퓨터과학의 학문적 측면에서 보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바둑보다 훨씬 쉬운 게임인 체스에서 인공지능 딥블루가 인류대표 카스파로프를 이긴 것이 1997년이니, 인공지능이 체스 이후 바둑을 정복하는 데까지 거의 20년이 걸린 셈이다. 더욱이 게임이라는 분야는 인공지능 과학자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들 중 가장 쉬운 영역이다. 체스나 바둑처럼 판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아군과 적군의 판세를 모두 볼 수 있어서 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수를 정하면 되므로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실세계의 문제들에 비하면 훨씬 쉽다는 것이다. 가령 음성인식 기술을 예로 들면, 조용한 곳에서 스마트폰에 대고 말을 하면 문자메시지로 받아쓰기를 곧잘 하지만,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이 기술을 못 쓰는 이유는 소음이 많은 곳에서는 음성인식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무인자동차 기술을 보면, 자동주차는 주변 차량들이 정지된 상태에서 수행하므로 비교적 쉬운 기술이나 난폭운전이 난무하는 도로에서의 자동주행은 불확실성이 높아 현재의 기술로는 아직 상용화가 어려운 것이다. 즉, 어떤 기술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상용화되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구글이나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무인자동차 기술의 막바지 엔지니어링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수년 내 무인자동차는 상용화되리라 본다. 그러나 컴퓨터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생각하며, 세상의 사물과 사람들의 행동을 눈으로 보고 이해해 상황을 판단하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없이도 스스로 학습하는 인간 같은 인공지능이 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최호진(카이스트 교수·전산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