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AI한테 직장 뺏기는 거 아냐?

입력 2016-03-16 18:08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을 펼치는 동안 ‘로봇저널리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다른 전문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기자들도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로봇저널리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궁금해 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했다.

“기사도 컴퓨터가 쓴다며? 인공지능한테 직장 뺏기는 거 아냐?”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거침없이 던지는 친구도 있었다. “아직은 프로그램 개발비보다 인건비가 싸다”라고 받아쳤지만 장기적으로 기사 쓰는 로봇을 개발하는 게 경영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상식이다.

원리만 놓고 보면 로봇저널리즘은 단순하다. 알파고가 기보를 입력하는 것처럼 기사에 사용되는 문장을 미리 저장한다. 그리고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입력된 자료를 비워둔 주어와 목적어 자리에 적절하게 대입해 문장을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을 5∼6개 쌓으면 기사가 된다.

하지만 팩트를 ‘적절하게’ 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파고는 ‘적절한’ 수를 찾기 위해 중앙처리장치(CPU)를 1202개 연결해 사용한다. 프로야구에서 만루홈런보다 중요한 희생플라이는 수없이 많다. 10대 0으로 이기는 상황에서 만루홈런은 축포에 불과하다. 하지만 9회말 0대 0에서 나온 1점 홈런의 가치는 앞서 만루홈런에 비교할 수 없다. 4보다 큰 1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지난해 서울대 이준환 교수가 이끄는 hci+d(human-computer interaction+design) 팀은 ‘가중치 매트릭스(weight matrix)’를 사용해 프로야구 기사를 작성했다. 이 기사는 페이스북(facebook.com/kbaseballbot)과 트위터(@k_baseball_bot)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기사만 봐서는 로봇이 썼는지, 사람이 썼는지 알 수 없다. 투수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경기의 기사는 ‘○○○이 선발투수로 나온’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첫 번째 문장에서 강조한다. 던지고 때리고 달리는 모든 상황을 이벤트(event)로 하나씩 분해하고, 이벤트마다 점수를 매겨 가중치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자료가 입력되자마자 순식간에 나온 기사는 노련한 기자가 경기의 흐름을 꿰뚫고 쓴 것과 다르지 않다. 기자들 속어로 ‘야마를 잘 잡은’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모여 이 기사를 봤을 때 누군가 “우리 수습보다 낫네”라고 말했을 정도다.

아직 로봇저널리즘은 몇몇 영역에 한정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증시 시황기사가 실용화됐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미국도 비슷하다.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라는 회사가 AP와 포브스를 통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서비스하지만 스포츠 경기 결과와 주식, 채권, 환율 등 금융 관련 단신이 대부분이다. 물론 로봇저널리즘이 계속 발전하면 사안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사가 나올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로봇이 사설까지 쓸지 모른다. 알파고는 ‘컴퓨터가 결코 넘보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자부하던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신문은 기사들을 나열하고 쌓아놓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같은 분량이어도 어느 기사는 1면 맨 위에 커다란 제목을 붙여 배치하고, 어느 기사는 단신으로 처리한다. 기사 안에 들어있는 팩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기사가 갖는 가치가 얼마인지 가늠하는 건 더 중요하다. 편집국에서 가장 노련한 베테랑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정보이자 온라인뉴스 시대를 사는 기자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 이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 있을까.

고승욱 온라인뉴스부장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