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해볼 만한 수준… 마음껏 즐겼다” 이세돌 대국 마무리 소감

입력 2016-03-15 22:13
이세돌 9단이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를 마친 뒤 미소를 지으며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이 9단은 알파고와 처음으로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하는 등 5시간에 걸친 대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280수 만에 불계패했다. 구성찬 기자

세기의 대국은 끝났지만 이세돌 9단의 시선은 계속 바둑판에 머물러 있었다. 아쉬웠던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발길을 옮기는 이 9단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내와 딸을 보고 잠깐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이 9단은 곧장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결국 해내지 못했다. 초반에 유리했는데 그럼에도 패했다는 건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담담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이렇게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9단은 비록 졌지만 인공지능 ‘알파고’를 넘지 못할 산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알파고의 두는 스타일과 대국 환경 등이 너무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시 붙어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은 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알파고가 상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인간이 아직은 해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패배가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9단은 알파고의 강점으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없이 집중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실력 우위는 인정 못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에서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9단에게도 알파고와의 대국은 도전이었다. 그는 다섯 번의 대국을 모두 즐겼다고 했다. 이 9단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바둑은 즐기는 게 기본이다. 어느 순간부터 과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의문이 들었는데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은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인간의 창의력이라든지, 바둑에 있던 격언에 의문이 들었다”며 “알파고의 수법을 보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다 맞는 것인지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손에 땀을 쥐게 한 대단한 대국이었다. 이 9단의 창의적 천재성과 대국 내내 보여준 모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런 훌륭한 바둑 대국을 목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4국 때 이 9단이 뒀던 78수를 비롯해 이번 대국에서 나왔던 훌륭한 수가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라며 “1억명 이상이 관심을 갖고 이번 대국을 지켜본 만큼 아시아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알파고는 한국기원으로부터 명예 9단증을 받았다. 한국기원이 아마추어 명예 단증이 아닌 프로 명예 단증을 수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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