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천대엽)는 15일로 예정돼 있던 국민의당 신학용(64) 의원 항소심 공판을 전날 황급히 연기했다. 재판부를 다른 재판부로 바꾸는 ‘재배당’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신 의원은 1심 때 선임하지 않았던 로펌 변호사를 새로 선임해 지난 11일 선임계를 제출했다. 이 로펌에는 신 의원 사건을 맡진 않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친척 관계인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재판부가 재배당 검토에 들어가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15일 이 로펌은 사임신고서를 제출했다. 법원도 재배당 검토를 철회했다. 선임된 변호사가 갑자기 사임하자 법원 내부에서는 “혹시 피고인 측이 재판부를 바꿔보려고 일부러 그 로펌을 선임했다가 논란이 일 듯하자 사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재판부를 바꿔보려는 피고인 행태를 법조계에선 ‘재판부 쇼핑’이라 부른다.
법조인 수가 늘면서 재판부의 배우자 등 친족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이 사건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13년 권고의견을 제시했다. ①변호사가 재판부의 배우자나 2촌 이내이면 사건을 재배당하고 ②3·4촌 친척이면 ‘담당’ 변호사인지 ‘소속’ 변호사인지 고려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역이용해 피고인이 재판부 쇼핑을 한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에 ‘이런 사건에선 이 재판부를 만나면 안 된다. 저 재판부는 그나마 낫다’는 얘기들이 실제로 돌고 있다”며 “(재판부 쇼핑이) 전혀 없는 일이라 보긴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도 “재배당 정책이 자칫 재판부 기피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친족 변호사 선임’ 외에도 재판부 쇼핑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방법원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 관할 본원으로 사건이 이송되는 점을 노리기도 한다. 이송 후 참여재판을 취소해도 변경된 재판부가 그대로 유지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1%의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은 피고인들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악용 사례를 실제 적발하기는 어렵다는 데 법원의 고민이 있다.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특정 재판부를 피하거나 또는 배당받기 위해서 악용한 걸로 의심은 되는데, 뚜렷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공정성이 의심되면 재배당을 한다”면서도 “변호사가 수백명인 대형 로펌의 경우 ‘(친인척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과연 재판부 재배당을 통해 더 유리한 판결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꼼수’로 의심되는 재배당을 받으면 그 재판부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가 좋아지리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첫 재판부의 고교 동문 변호사를 선임했던 김양(63) 전 국가보훈처장은 재배당된 재판부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피고인의 꼼수 ‘재판부 쇼핑’을 어찌하나
입력 2016-03-1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