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현장 특수청소업체, 남은 이의 삶을 위해 떠난 이의 자리를 치우다

입력 2016-03-16 04:00
특수청소업체 ‘스위퍼스’ 길해용 대표가 지난달 3일 부산 북구 살인사건 현장에서 뜨거운 증기로 창문을 닦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길 대표가 지난해 경남 고성군 고독사 현장에서 탈취약품을 뿌리는 모습. 스위퍼스 제공

“그건 저희도 어렵겠는데요.” 지난 4일 청소 의뢰 전화를 받은 특수청소업체 ‘스위퍼스’ 길해용(31)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살다 숨진 A씨(43) 집을 치우기 위해 유족들이 ‘크레졸’ 성분이 든 소독약품을 뿌렸다고 했다. 숨진 뒤 두 달 만에 발견돼 이웃에서 ‘냄새 민원’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소독약 뿌리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예상치 못한 악취를 불러왔다. 더 심해진 냄새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문의였다.

‘떠난 자리’를 치웁니다

유족의 간곡한 부탁에 길 대표는 결국 수락했다. 이틀이면 끝날 작업은 배로 늘어 나흘에 걸쳐 진행됐다. 첫날은 자외선·오존 살균소독기를 종일 틀었다. 길 대표가 직접 개조해 성능을 한층 높인 장비다. 공기 정화와 악취 제거가 동시에 이뤄진다.

이튿날부터 본격 청소작업이 시작됐다. 우선 집에 있는 물건을 전부 치워야 한다. 재활용할 수 있는 옷이나 신발 등은 따로 모아두고, 생활쓰레기 등은 폐기물 처리업체에 맡겨 보낸다.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대부분 버린다. 가전제품을 작동하면 열이 나면서 냄새가 깊이 밴다.

길 대표는 이어 벽지와 장판을 제거했다. 집 전체를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셈이다. 구석구석의 구더기와 번데기도 찾아 없앴다. 합판을 사용한 집은 오래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 구더기가 숨어 있다. 이렇게 청소를 마친 뒤 탈취약품을 곳곳에 뿌려 마무리했다.

스위퍼스는 ‘특수청소업체’라고 불린다. 고독사, 자살, 강력범죄 등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치우고 닦고 유품 정리까지 해준다. 남은 이의 삶을 위해 떠난 이의 자리를 치우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서 11일 만난 길 대표는 “사망한 지 한참 된 시체가 있던 현장은 시체에서 나온 온갖 이물질과 악취 때문에 일반적인 청소로는 다시 사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콘크리트까지 제거하기도

특수청소업체는 2010년쯤 등장했다. 이전에는 폐기물업체가 쓰레기를 가져가고 일반 청소업체가 현장을 치웠다. 하지만 혈흔이나 냄새 제거법을 잘 몰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부패한 사체에서 나온 이물질이 콘크리트 깊숙이 스며들면 콘크리트를 아예 뜯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냄새가 집 안에 계속 남는다.

길 대표는 2012년 9월 대구로 출장 갔던 얘기를 꺼냈다. 시체가 있던 집을 꼼꼼하게 청소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파리가 가득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원인은 방과 방 사이 벽의 합판에 있었다. 합판 틈새에 있던 구더기가 파리가 돼서 나온 거였다. 길 대표는 “아차 싶을 때가 많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초기엔 애프터서비스 요청이 많았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수를 많이 줄였다”고 했다.

특수청소업체는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집의 상태를 묻는다. 얼마나 넓은지, 집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장판 종류는 무엇인지, 벽지를 발랐는지, 페인트칠을 했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부패 상태가 심하면 품이 많이 든다. 인건비와 약품 처리 비용까지 합해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500만원의 청소비를 받는다.

따뜻해지면 바빠지는 그들

날이 풀리면 길 대표는 바빠진다. 따뜻해지면 추울 때는 미처 몰랐던 고독사 현장에서 악취가 퍼진다. 주로 이웃의 신고로 발견된다. 무연고 사망의 경우 집주인이 청소를 의뢰한다. “왜 여기서 죽어 고생을 시키느냐”며 고인에게 욕을 퍼붓는 집주인도 있었다. 길 대표는 이달에만 세 곳을 청소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7∼10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길 대표는 비영리단체 ‘한국유품정리사협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협회에선 강력범죄 현장을 청소할 땐 최소한의 처리 비용만 받는다. 경찰청은 범죄 피해자 지원 차원에서 건당 최대 400만원 청소비용을 지원한다. 연간 2억8500만원 예산이 책정돼 있다. 협회 입장에선 사실상 자원봉사인 셈이다. 길 대표는 “청소 전문가인 우리가 도와줘야 남은 사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